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08/06/12 12:48

[경향신문]신현림 시인, “오죽했으면 이 깊은 밤에 애 둘러업고 나왔을까”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6021506291&code=940707

“오죽했으면 이 깊은 밤에 애 둘러업고 나왔을까”
입력: 2008년 06월 02일 15:06:29
 
ㆍ신현림 시인 촛불집회 르포

시인 신현림씨가 29일 밤 서울 종로에서 미 쇠고기 수입 고시 철회를 외치며 거리행진을 하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정지윤기자>


깊은 밤속으로 평화행진 인파의 함성이 북소리처럼 어둡고 장엄하게 울려퍼졌다. 절박한 구호는 하늘 가득 날리는 아카시아 꽃잎 같았다. 그만큼 향기롭고 애달팠다. 광우병이란 이름만큼이나 이것이 현실인가 싶을 정도로 행렬은 엄청나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세상 끝에 서있는 절망감과 생생히 살아있다는 존재감 사이에서 강물처럼 흘러가는 행렬. 이렇게 모두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을 듯한 분위기였다.

“협상무효, 고시철회!”

시청앞에선 밤늦은 시간까지 아이들 유모차에 태우고 나선 엄마들과 아이들의 모습이 거친 바람에 나부끼는 나무처럼 애처로왔다. 오죽 걱정됐으면 이 깊은 밤에 애를 들쳐업고 나왔을까. 누구라도 탄식과 염려 속에서 참다 못해 뛰어든 22번째 촛불평화시위단을 보면 광우병 쇠고기사태가 얼마나 중대한지 피부로 절절히 느꼈을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새수입위생조건을 담은 장관고시가 29일 발표된 후 대학생, 회사원, 중년의 여인들과 노인들, 먼 타지에서 10대 여학생들까지 시위에 참가했다. 경찰과 대치해 혹시나 사고날까 걱정되어 긴 띠를 만들어준 예비역 형님부대까지 대대적 촛불 행렬인파에선 그 어떤 순정, 애국심이 느껴져 뜻깊었다. 매연에 휩싸여 행진하는 시위대에게 진흙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며 감동과 불안 속에서 나는 따뜻했다. 참 많은 생각을 하였다. 기존의 시위와는 달리 이번 집회는 온 국민, 모든 계층의 자발적인 참여라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시청, 소공동, 을지로, 종로, 청계천광장으로 가는 엄청나게 많은 촛불시위행렬을 보며 70, 80년대 민주화운동을 떠올렸다. 물론 민주화 운동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나 제대로 잘 살고 싶다는 국민의 여망을 담은 행렬은 진지하고 뼈아프고, 절실했다.

경찰의 모습은 일편단심 민들레처럼 10년전과 똑같은 표정이다. 그러나 시위대들은 화염병 대신 최첨단 휴대폰으로 사진 찍고 행진하는 것이 흥미로왔다. 어떤 학생은 캠코더로 기록을 하였다. 시위대의 진로 방향을 정확히 주고 받는 얘기가 신기해서 보니 핸폰 문자가 위급사항을 전하러 날아다니는 매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어쩜 이렇게 나이 연령대가 다양할까, 유심히 살펴보았다. 생전 다시 못볼 이들이 한곳에 모여 "이명박 정부는 퇴진하라"고 외치는 외침은 도시 곳곳을 후벼파고 있었다. 대통령과 정부책임자들의 정치의식, 생태환경의식은 얼마나 되는지 궁금했다. 근근히 먹고 살기도 힘든데 충분한 설명도 없고 의견도 묻지 않은 어리석은 졸속 협상으로 대통령과 정부는 국민에게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정책심의자들이 미국산 쇠고기 설렁탕이라도 먹는 정성을 보이며 설득하고 노력했다면 국민의 분노는 덜했을지 모른다.

종각역쯤에서 나는 사진을 찍으려고 1m 높이의 단상위로 올라갔다. 사람들이 울부짖는 소들의 행렬처럼 보여 나는 눈을 다시 감았다 떴다. 열망이란 강렬한 에너지가 락음악의 리듬처럼 사람들 마음을 하나로 묶고 끝없이 흘러갔다.

풀을 먹고 사는 소에게 쇠고기 찌꺼기를 먹이는데 어떤 소가 미치지 않을까. 그것이 사람에게 인육 찌꺼기를 먹이는 것과 뭐가 다르랴.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고 사람이 광우병에 걸리는 거 또한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문제는 애꿎은 국민이 피해자라는데 있다. 이제 우리의 착한 누렁소가 영혼 없는 먹이감으로만 되어버렸나.

15년전 보길도에서 본 서럽게 울던 소가 떠올랐다. 크고 맑은 홍차빛 눈망울…. 거기서 내가 발견한 것은 고깃덩이로 변할 소가 아니었고 광우병에나 걸리는 소가 아니었다. 혼자 외롭고 존재가 서러워 울부짖는 사람과 똑같은 소였다. 영화 ‘졸업’에서처럼 사이먼과 가펑클의 노래를 깔고 캐서린 로스를 데리러 달리던 더스틴 호프만 같은 존재가 자신을 구하러 올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진 존재 말이다. 이대로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존재….

광우병 사태 후 셀 수도 없이 많은 소들이 불태워지고 버려졌다. 모기만도 못하게 죽어갔다. 이는 장작 태우는 것과 다르다. 모든 생명체의 건강조건은 건강한 토양, 좋은 공기, 깨끗한 물이며 그 속에서 자연의 순리를 따른 먹거리여야 한다. 그 옛날 히포크라테스도 “당신들의 식품이 당신들의 치료약이어야 하고 당신들의 치료약이 당신들의 식품이어야 한다”고 했다. 광우병 쇠고기 문제는 생명의 존귀함을 잊어서 생긴 일종의 환경재앙이다. 동물에게 소에게 영혼이 있음을 잊은 댓가다. 인간 본위적 환경시스템을 다시 살피지 않고서 기존의 정부 패턴 속에서 변하지 않고는 우리에겐 희망이 없다.

광우병 쇠고기의 수입으로 터져나온 거리행렬, 그 속뜻은 참 많은 의미를 담고 있음을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 촛불 하나마다에 환경재앙시대에 역행하는 대운하 건설이란 한심한 정부정책에 대한 걱정과 깊은 회의가 뿌연 안개처럼 깔려있다. 이는 언제나 자리다툼이 먼저인 소인배 한국정치에 대한 개탄, 절규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국민은 회전목마처럼 지루하게 돌고 도는 자본의 논리로부터 살짝 벗어나 인생과 먹거리에 대한 해결방법을 함께 찾자는 절박한 소원을 가지고 초에 불을 켰다. 우리들의 진정한 대박은 로또 당첨이 아니다. 가난해도 알알이 주스처럼 달콤한 마음의 풍요속에서 사람답게 사는 것이다.

졸속협상의 뼈아픈 반성 및 사과와 신중한 쇄신이 없으면 대통령은 5년이 편치 못할 것이다. 그리고 뭐든 지나치면 탈이 나듯 시간이 가면 촛불시위행렬도 배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빠른 시일내에 모두가 기원하는 방향으로 해결되길 바랄 뿐이다. 그래야 국론 분열도 막고, 경제 살리는데 뜻을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인과응보란 말이 귀신처럼 무섭다. 광우병이 환경재앙이며 자연의 보복이듯이. 생태환경은 살고 죽는 지금의 문제임을 소여물처럼 씹으며 지구 살리는 생활실천을 하며 살련다. 사랑이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것이라면 순수한 애국심은 위기의 한국을 구하리란 희망을 풍선처럼 따뜻이 부풀려가고만 싶다. 소가 미치면 사람도 미치는 거야, 나무가 죽으면 산이 죽고, 물고기가 죽으면 바다가 죽는 거야, 라고! 연기같은 탄식을 던지면서….

<신현림/시인·사진작가>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Trackback 0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