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뉴스데스크 "'고전하는 검찰'"(11월 1일 방영) 중 한 장면
"여러분, 만약 여러분들이 사건에 대해서 공정한 판결을 내린다면 미국의 주식은 짧은 시간 내에 10배로 늘어날 것입니다."
미국의 한 대법관이 신임 법관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연설한 퇴임사의 내용이다. 사법부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헌법과 법률을 수호하기 때문에 법 감정이라는 시대변화와 성문법의 시효를 줄기차게 갈마들며 현재적 판단을 내리기 위해 고뇌하는 자리가 바로 사법부다.
하지만 똑같은 법조문을 판단근거로 하고 있으면서도 사법부와는 전혀 다른 특징을 보이는 법조인들이 있다. 바로 검찰이다. 검찰은 국가 사정기관으로서 국가의 판단에 따라 움직일 때가 많다. 그래서 종종 '정치검사'라는 수식어가 붙곤 한다. 더군다나 대한민국 검찰은 수사에서부터 기소, 공소유지, 형 집행 등 모든 권한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견제 받지 않는 권력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최근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의 '조중동 광고지면 불매운동'(이하 '광고 불매운동') 재판이 벌어지고 있다. 이 재판만큼 두 사법기관의 차별성과 우리나라의 사법 현실을 잘 보여주는 사건은 드물다.
검찰의 무리한 기소, 공소권 남용 아닌가?
매주 화요일마다 서울지방법원 311호 법정에서는 광고 불매 운동 재판이 열린다. 나는 간간이 재판 광경을 지켜보기도 하고 기소된 24인의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검찰에 의해 기소된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이하 언소주) 회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확신하게 되는 것은 검찰의 공소권이 남용되었다는 점이다.
예컨대 검찰은 기업이나 노동자에게나 적용되는 셔먼법(우리나라의 공정거래법과 유사)이나 태프트-하틀리법(우리나라의 노동조합법)을 처벌근거(유추근거)로 공소장을 작성했다가 나중에 슬그머니 이 내용을 빼버리고는 오히려 한국식으로 처벌하자고 입장을 바꾸기도 했고, 11월 11일 변호인단에 의해 증인으로 출석한 미국법에 정통한 박경신, 김기창 교수(고려대)에게 검찰은 제대로 된 반대심문조차 해보지 못하고 침묵했다.
사실 검찰의 무리한 기소가 이것뿐이 아니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을 배임 혐의로 기소한 첫 형사공판에서 검찰은 재판부가 요구한 15개의 질문항목에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해 재판 자체를 연기한 수치스러운 일이 있었다(2008년 11월 1일, MBC뉴스데스크, "'고전하는 검찰'"). 검찰이 최소한의 상식을 가지고 공소권을 행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삼성 송사에서 '떡찰'이라는 이름이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다시 '정치 검찰'로 되돌아왔을 뿐이다.
검찰이 세금을 내는 시민에 대해서 공소권을 남용할 때는 엄청난 경제적, 사회적 손실을 초래한다. 기소된 언소주 회원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휴가를 내야하며, 재판에 불참할 시 구속될 수도 있기 때문에 매주 재판에 참석해야 한다. 즉 기소행위 자체만으로 일반 시민에게는 엄청난 타격을 줄 수 있다. 검찰의 공소권 남용에 반드시 견제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언소주 재판은 잘 말해주고 있다.
증인 박경신 교수의 지적... 강의실 된 재판정
11월 11일의 재판은 일반적인 재판정의 모습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재판정의 모습이라면 변호인과 검사가 뜨거운 법리공방을 벌이는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그 날 재판은 검사도, 변호사도, 재판장도 '학생'에 불과했다.
박경신, 김기창 교수는 증인 변론에서 '2차 불매운동'에 대한 쟁점으로 증언을 시작했다. 박경신 교수가 <한겨레>에 기고한 글(7월 15일 "'2차 불매운동'에 대한 오해")에 따르면 2차 불매운동은 소비자가 아니라 기업을 대상으로 해서 만들어진 법률이다.
즉 갑이 을에게 "병과 거래를 하면 당신과 거래를 중단 하겠다"고 말하는 것인데, 이것은 갑이 을에 대한 시장지배력을 이용하거나 을과 담합하여 자신의 경쟁자인 병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위이므로 공정거래법에 의해 당연히 금지된다.
결국 2차 불매운동 금지제도는 바로 소비자 보호를 위한 공정거래법적인 이유로 만들어진 것인데, 조중동과 검찰은 소비자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법률을 도리어 소비자에게 덮어씌우는 몰상식한 행동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박경신 교수는 이 점을 지적했을 뿐이다. 그리고 2차 불매운동의 두 가지 특징, 즉 경제적 2차 불매와 정치적 2차 불매 중 언소주의 광고 불매 운동은 정치적 2차 불매에 해당하는데 이 때 역시 위법성을 적용할 여지가 없다. 결국 소비자의 의사표현은 폭력이 수반되지 않는 한 위법이 아니라는 것이 박경신 교수의 결론이다. 만약 이를 처벌한다면 그것은 '위헌'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위에 언급한 <한겨레> 기고문에서).
기본권의 충돌에 대해서도 명쾌한 결론이 나왔다. 이번 송사의 경우 소비자의 권리와 영업의 자유라는 두 기본권이 상충되는 듯 보이지만, 자신이 선호하는 기업의 조건과 그 조건의 근거가 되는 세계관과 가치관을 기업에 밝히는 것은 절대적으로 보호되어야 하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이며 소비자의 권리이며 그 기업 또한 소비자에게 거래(구매)를 강요할 권리가 없으므로 두 기본권은 원천적으로 상충하지 않는다.
이 밖에 두 증인은 이번 재판에 시사점을 주는 미국의 판례를 들어 광고 불매 운동의 정당성에 손을 들어 주었다. 1982년 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의 밸인 상점 불매운동 사건과 풋힐타임즈 신문사 업무방해 사건, 셔먼법 또는 태프트-하틀리법 등이 그것이다.
굳이 이러한 판례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세계의 기업들은 소비자를 법정에 세우는 일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오히려 덮어놓고 소비자에게 엎드려 사죄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2007년 8월 HSBC 영국 지점이 대학교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무이자 대출을 상품으로 걸어 신규 고객을 유치했으나 고객이 눈처럼 불어나자 애초의 약속을 파기하였다. 고객들은 페이스북이라는 온라인 공간에 글을 남겨 대규모 집회를 경고했지만, 집회가 시작도 되기 전에 HSBC는 백기투항했다(클레이 서키,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갤리온), 193~194쪽). 조중동이었다면 이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이번 재판을 살펴보면서 한 가지 조그만 희망을 발견했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사안의 막중함을 절감하며 진지하게 재판에 임하는 재판장(이림 부장판사)은 두 증인에게 불치하문의 자세로 예리하고 진지한 질문을 하였고 끝까지 경청하며 깊이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것을 보고 왜 재판부가 최후의 판단을 해야 하는지 생생하게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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