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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의 창/사는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101건

  1. 2010/02/06 고무장갑에게 모욕당하기는 난생 처음
  2. 2010/01/04 폭설 내리니 재래시장 살아나네 (2)
  3. 2009/12/28 "내집앞 눈치우기 조례" 혹시 잊으셨나요?
  4. 2009/11/25 아기의 삭발투쟁, "아빠 빨리 들어와"?? (3)
  5. 2009/11/21 노인처럼 웃는 아기
  6. 2009/11/13 이런 바보라면, 난 "바보"하겠다
  7. 2009/10/27 신종플루 때문에 아기 100일사진도 취소했어요 (3)
  8. 2009/10/20 아기와 엄마의 먹고 먹이는 싸움 (2)
  9. 2009/09/11 한 달에 33일 일하는 억척스런 엄마를 인터뷰하다 (6)
  10. 2009/08/08 태어난 지 2분만에 인터넷 스타된 우리 아기 (1)
  11. 2009/07/29 지하철 9호선 제대로 이용하려면 "급행시스템"을 알아야 한다 (4)
  12. 2009/06/03 노무현 덕에 번 돈 노무현에게 기부합니다 (66)
  13. 2009/05/15 초등학생인 나 대신 의자를 때린 고마운 선생님 (2)
  14. 2009/05/11 예쁜 화장실 탐방기 (7)
  15. 2009/05/08 한달에 33일 일하는 '울 엄마'를 인터뷰하다 (1)
2010/02/06 12:27

고무장갑에게 모욕당하기는 난생 처음

삼실에서 설거지를 하려고 장갑을 찾았습니다.

맨날 맨손으로 하다가 물이 너무 차서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해야지 했습니다.

그런데 앞서 누가 설거지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장갑을 이상하게 벗어놓고 갔어요.

참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무장갑에게 모욕당하기는 난생 처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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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4 18:17

폭설 내리니 재래시장 살아나네



간밤에 내린 폭설 때문에 택시는 완전히 영업을 포기했고,
버스 역시 도로가 주차장이 됐다.
지하철은 아비귀환이 되었다.
출근하는 시민들은 녹초에 울상이 되었다.
서울시장은 폭설 때문에 서울시민 전체의 공분을 샀다.
"다시는 이런 식으로 제설하지 않고 확실히 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서울시장 후보자들은 때 아닌 호기를 만났다..
눈 때문에 울고 웃고 정말 요지경 세상

하지만 폭설 때문에 희비가 갈린 곳은 상권이었다.
재래시장은 오늘 대박났다.
까치산 시장을 주로 이용하는데,
두부를 사려고 줄을 서 보기는 처음이다.
홈플러스나 이마트에 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은 시장을 볼 수 없으니,
가까운 재래시장으로 걸어가 장을 보았다.

반대로 차량 손님이 많은 홈플러스나 이마트 등을 한산했다.
겨우내 이 정도 폭설이 내린다면 매출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 유통망에 의존하는 부문은 타격이 심했다. 특히 인터넷서점의 경우 배송처리를 할 수 없어서 주문을 받을 수 없었다.

동네시장은 걸어서 갈 수도 있고 가격도 마트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아마 습관적으로 마트를 이용한 사람들은 동네 시장의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폭설이 내리는데, 일부러 대형마트 가다가 접촉사고 당하느니보다
걸어서 동네시장 가서 간단한 먹거리를 사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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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8 11:22

"내집앞 눈치우기 조례" 혹시 잊으셨나요?

온 세상이 하얗게 덮인 주말이었습니다. 특히 작년에는 겨울답지 않은 겨울이 지난 것 같아서, 2년 만에 진짜 겨울이 찾아온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기분이 달라졌습니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십분 정도면 가는데, 오늘은 눈 때문에 20분 넘게 걸렸습니다. 내집앞 눈은 내가 치우기로 약속한 게 엊그제 같은데, 골목 구석구석 눈 치운 가정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나마 대로변으로 접어드니 눈 치우는 분이 한두 분 보이기 시작합니다.


건설현장에서 한 분이 길거리까지 눈을 치우고 있습니다.


현장 구석구석에도 눈을 열심히 쓰는 것을 보니 마음이 상쾌해지면서 군대 생각도 났습니다.


이웃의 부동산집 아주머니가 힘겹게 눈을 치우고 있었습니다. 얼른 뺏은 다음 저도 주변을 쓸었습니다. 눈을 쓸고 나니 땀도 나고 상쾌했습니다.


서울시는 2006년 7월에  ‘건축물 관리자의 제설.제빙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그 해 겨울에 시행하였는데 올 겨울 역시 어김없이 이 조례가 적용될 것입니다.

조례를 지키지 않아도 과태료를 물지는 않지만, 눈을 치우지 않아 생긴 사고에 대해선 건물주나 상가 임차인이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 합니다.

법률과 상관 없이 옛날부터 아침에 골목 어귀마다 눈 쓰는 광경이 인상적이었는데, 몇 년 동안 그런 모습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런데 골목길을 걸어오면서 특이한 장면이 있었습니다.
차는 많이 다니는데, 체인을 감은 차는 하나도 안 보였습니다.
아직은 체인을 감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요?
그리고 차들이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눈이 오는 날은 하루 종일 지하철이 밀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출근 러시아워를 넘기니 한산한 느낌이었고 도로는 꽉 막힌 느낌이었습니다.

오늘 접촉사고가 많이 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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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5 20:37

아기의 삭발투쟁, "아빠 빨리 들어와"??



아내가 사진을 보내 왔습니다.
민준이가 머리를 홀라당 깎았더라구요.
동자승이 돼 버렸습니다.
추운 겨울에 왜 머리를 깎았냐구요??
4개월 지나 5개월로 접어드니까 배넷머리가 자꾸 떨어져서 입으로 가더라구요.
그래서 미용실에 갔더니 아기 미용이 5천원이라고 하더군요.
깎아 버렸습니다.



이랬던 아기였는데.. 분위기가 확 달라졌죠.
요새 회사일이 엄청 늘어나서 미치겠습니다.
밤10시면 일찍 들어가는 거고 11시 12시 될 때가 보통이죠.
오늘은 철야 야근.
아기를 집에 둔 아빠로서 참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기가 삭발을 했다고 하니까 '삭발투쟁'이 아닌가 지레 찔리네요.
이번 주말에 날씨가 좀 좋으면 가족들과 밖으로 놀러 가려구요.

아기를 둔 아빠님들,
주말에 아기랑 놀아 보니 노는 일이 일이더군요.
안아주지 않으면 하루 종일 칭얼거리고. 제 몸 무거운 줄 모르고, 가만 놔두질 않아요.
엄마들 지치지 않게 일찍 일찍 들어갑시다.
싸이가 아기 보기 싫어서 부대 위로공연갔다고 농담하던데,
저는 심각하게 들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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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1 10:47

노인처럼 웃는 아기


지난 10월 31일은 우리 아기 민준이 100일잔칫날이었습니다.

할로윈 데이라고 해서 호박 모자를 사다가 씌워 주었어요.

만4개월로 접어드는데, 요새 뒤집기 쇼를 보여주며 깜짝 놀래킨다는..

 

 

그냥 호박모자 하나 씌우고 찍었어요. 그래도 할로윈 기분은 내야죠.

기막히게 민준이의 100일과 맞았네요.

간만에 가족들이 모여서 잔치 열었습니다.

풍선을 입으로 불었는데 손과 입술에 검댕이, 아니 파란 게 계속 묻어 있었다는..

 

 

요새 제 잠 결재를 해주시는 분입니다.

새벽 2시까지 결재를 안 해주셔서,

눈 벌겋게 하고 출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특기는 아무나 보면서 웃기.

아빠라고 특히 봐주는 거 없습니다.

그냥 웃지요~~~

 

▲ 말 달려들 것 같은 웃음. 엄마, 아빠에게 박치기하는 게 특기인 신생아님~


 


▲ 호빵맨 더하기(+) 썩소 




 

 ▲ 민준이 특유의 노인웃음. 이 달관한 표정은 어디서 나오는가.

 

 

 특히 썩소를 기가 막히게 잘합니다.

아기들의 표정이 이렇게 다양할 수 있는지 자주 놀랍니다.  


요즘에는 걱정이 하나 생겼습니다.

100일도 지났고 해서 이제 슬슬 민준이에게 맞는 책을 구해다가 읽어주고 싶은데,
어디 좋은 책 없을까요?
집에 있는 책들은 민준이에게 읽혀주기에는 너무 수준이 높네요.

아니면 몇 달 더 기다렸다가 책을 읽어줘야 할까요?
지금 민준이에게 맞는 책이 있을까요??

궁금하네요.
요새는 민준이 볼 때 부자가 서로 멍때리며 그냥 웃습니다.
그러면 옆에서 막 야단맞아요. 말을 좀 하라고.. 책을 읽어주면 딱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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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3 13:02

이런 바보라면, 난 "바보"하겠다

다음아고라 :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3154008

 

 

소외된 이웃을 위해 "여자"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소외된 이웃을 위해 기꺼이 바보가 되어주시겠습니까?"

 

이렇게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여성들이 자랑스럽고 존경스럽다.

 

이 여성들이 "사고"를 친 것은 처음이 아니다. 탐탐바자회와 봉하농활 등 일을 만들며 사서 고생한다.

개념찬 여성들이 이렇게 많이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희망이 있는 거 아닐까?

 

 

▲ 언론악법 방송광고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탐탐바자회에서 악착같이 물건을 팔던 그 여성들이 이제는 손에 피, 아니 고춧가루를 묻히려고 한다.

 

돈 많은 부자가 거금을 내놓는 게 아니라,

시민 / 네티즌들이 한푼 두푼 모아서 김장 재료를 사고

직접 자원봉사로 나서서 김장담그기, 배달하기를 한다는 이쁜 발상.

관청이나 보수단체, 대기업들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홍보하는 방식이 아니라

개념찬 시민들이 알음알음으로 입소문내고 모여드는 방식

 

일단 먼저 1만원 넣었다. 12월 6일이니까 달력에 체크해두고 가서 짐꾼이라고 할 생각이다.

그 전에 블로그, 카페 등등에 퍼나르는 게 먼저.

지금은 후원계좌만 개설된 상태이지만,

나중에 자원봉사 모집이나 기타 참여방식이 공지되면 먼저 손을 들어야지.

 

귀한 돈 보내놓고 시간 쪼개고, 일요일에 가족들과 안 놀아준다고 마눌님께 야단맞을 게 분명하지만,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기꺼이 "바보"되겠다. 무엇보다 거기에 개념찬 여성들이 있으니 금상첨화 아닌가. 그렇다. 난 남자다^^

 

  

※ 혹시라도 "유시민"이라거나 "시민광장"이라는 정치색 때문에 참여가 꺼려질 수 있지만,

이번 김장담그기는 정치색과 상관 없이 개념시민들이 만든 잔치다. 안 그러면 소울드레서 같은 카페에서 공동주최할 리가 없겠지.

 

 

★ 신청은 아래 주소에 가서 댓글로 하면 된단다.

 

http://usimin.co.kr/network/club_main.php?botable=1&cb_id=job_03&sca=시민주권참여방&wr_id=5234 

 

 

 

★ 기타 구체적인 안내

 

■ 행사일정: 12월 6일 일요일(장소 추후 공지)

■ 개인준비: 머릿수건, 마스크, 김장고무장갑, 일복

■ 참여단체 : 주최) 여성시민광장, 삼국(쌍코. 화장발. 소울드레스), 진알시(전국)

                참여) 섭외중(전교조, 민총련, 진보시민단체 연합 예정)


대체 김장은 무슨 돈으로 할까요? [여러분의 후원을 기다립니다!]

예,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의 십시일반만이

이웃의 맛있는 밥상을 보장합니다!

적은 금액이라고 머뭇거리지 마세요!

작은 행동이 모여 큰 움직임이 됩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후원, 정말정말 진심으로 기다리겠습니다.

 006002-04-081719 국민은행 / 예금주: 박혜영 (총무-눈물과희망)


■ 사랑 담그는 바보들을 위한 빅 이벤트! [최고의 김장 패션을 찾습니다!]

봉사도 즐거울 수 있다는 모토에 따라 김장하는 날 이벤트를 마련했습니다.

봉하농활에서 삼국녀인들의 몸빼+머릿수건 패션이 각광받은 가운데

이번에는 최고의 김장 패션을 선보인 분들에게

익명의 복지가(^^?)로부터 후원받은 상품을 드리고자 합니다.

*상품

1등(1명) - 요즘 금값 알죠? <순금 1돈>

2등(3명) - 따숩고 부티 나는 <패딩 조끼>

3등(5명) -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후드 티>

*심사위원 및 기준

-여성광장 일꾼이자 유명연예인 스타일리스트인 boraa님 마음대로!

※심사는 당일 현장에서 이루어지며

후기 사진으로 기록될 수 있음을 유념하세요!

참고로 받은 상품을 다시 기증하는 천사 같은 분들께는

여성시민광장 명예위원으로 위촉함과 동시에

이에 따른 혜택은 보장 못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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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7 13:42

신종플루 때문에 아기 100일사진도 취소했어요



신종플루 위험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것 같아요.
어제만 5명이 숨지고 하루에 4,000여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휴교를 하는 학교도 60곳에 가까워요.
현재까지 세계에서 41만명의 감염자가 생겼다고 하네요.


신종플루의 여파가 우리집에까지 들이닥쳤습니다.
우리 아기 민준이가 오늘로 세상에 나온지 95일이 되었는데,
100일사진 찍으러 가려던 계획을 취소하기로 했어요.

그 대신 수원과 시화에서 가족들이 와서 축하해주기로 했어요.
이제는 아기를 데리고 나가기가 무서워요.
아기는 면역성이 약해서 금방 노출되고 말 텐데.
어제는 목 주변의 땀을 닦는데 피부가 얼마나 약한지 금새 베어져 버리더라구요.

아기가 빨리 자라야 나들이도 가고 뛰어놀고 할 텐데.
신종플루가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 100일사진 대신 아기랑 노는 사진. 아기를 웃게 하려고 요즘 신기술을 개발하고 있는데, 아기가 얼마나 웃었던지 딸꾹질이 나던걸요. 딸꾹질 때매 모유 먹여야 한다고 민준이 엄마한테 혼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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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0 13:51

아기와 엄마의 먹고 먹이는 싸움




아기가 태어난 지 88일 됐습니다.
이제 살 만큼 살았다고 사람이 없으면 앵~ 하고 울드만요.
좀 만져주고 안아주고 하라는 말이지요.
먹기는 얼마나 많이 먹는지 아내가 요새 지쳐서 제대로 된 자세로 자지도 못해요.

어젯밤에 아기 먹이다가 쓰러진 것 같아요.
아기는 베개 위에 대자로 누워 있고 엄마는 벽에 기대 쓰러져 있는 모습 발견해서 한 장 담았습니다.
엄마가 많이 먹지 못하면 엄마의 영양분까지 모두 모유로 간다고 해요.
그래서 골다공증 같은 게 생기는 거라고..
순간 "다이어트 되겠네" 하고 생각한 게 부끄러웠습니다.

처음에는 울지도 않던 아기가 드디어 '울음의 언어'를 발견한 모양입니다.
심심해도 울고, 졸려도 울고, 배고파도 울고..

그런데 아기 우는 소리는 원래 그런가요?
영화나 광고에서 나오는 옥구슬 소리에 우리 민준이한테서도 나더라구요.
울음소리가 너무 맑아서 멍때리며 우는 거 구경했다는...

암튼 아기도 엄마도 고생이 많습니다.


민준이 첫날부터 88일까지 오면서 크는 모습 구경하세요.

태어나자마자 눈을 떠서 사람들을 놀라게 한 아기입니다.
태어난 지 일주일 안의 모습입니다.

한달쯤 된 모습입니다.
목욕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네요.
배냇웃음을 제대로 지을 줄 알아요. 썩소 작렬입니다.


두 달쯤 된 사진입니다.
먹을 거를 앞에 둔 모습입니다.
이때쯤 별명이 '눈빛왕자'로 바뀌었습니다.




최근의 모습입니다.
여러 가지 표정을 지을 수 있습니다.
코가 점점 커지고 있네요.

이렇게 크는 동안 엄마는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요.
그런데 아빠는...

쫌 부끄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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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1 10:57

한 달에 33일 일하는 억척스런 엄마를 인터뷰하다


해녀 일을 하는 제주 토박이 고순자 씨(64세)는 자식 셋을 키운 평범한 어머니다. 1남4녀의 넷째 딸로 태어났지만 제주 4.3으로 부모를 잃어 어려서부터 받을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하고 그 대신 엄격한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19세에 해녀 일을 시작해 26세에 시집을 갔고, 남의 집 살이 13년 만에 집을 장만했으며, 작년에 남편과 사별했다. 인터뷰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아들이 추석에 맞춰 낙향한 13~14일 이틀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성산포 집과 슈퍼 가는 길목, 부둣가 해녀의 집 등지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이제까지 어떤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았으며, 최초로 응한 인터뷰는 바로 아들과의 인터뷰다. 자식 키우면서 가장 기쁠 때가 언제인지 묻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아들의 생환'이라고 말했다. 어렵게 얻은 막내아들은 태어난지 3개월 만에 급성폐렴과 임파성 결핵 등 생사를 위협하는 굵직한 병마만도 대여섯 차례나 맞았다. 장기입원 등 수술을 한 것은 두 자리가 훌쩍 넘어갔다. 대학 시절 폐종양 수술을 마지막으로 병마의 기나긴 위협이 한풀 꺾였다. 이런 까닭으로 그는 아기가 자신의 눈을 속이는 것이 아닌가 항상 두려워했다고 한다. 금방 하늘나라로 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늘 잠자다가 내일 없어져버리지 않을까 하다가 다음날 잠에서 깨면 살아있을 때가 가장 기쁘고 뿌듯한 순간이었다"고 술회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

▲ 어머니가 45년 동안 입고 다녔던 고무 해녀복. 해녀복은 오래 입으면 5~6년 입는데, 이 옷은 6년도 넘은 옷이다. 제주 해녀들은 모두 검은 고무옷을 입고 바다에 다닌다.


45년 해녀 인생

- 해녀 일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소라공장에서 7년 일하고 23세에 육지(제주도에서는 한반도 대륙을 '육지'라고 부른다)에서 몇 년 살다 왔지만 대체로 19세경부터다. 할머니는 가정살림하면서 해녀 일을 해도 늦지 않는다면서 그 일을 못하게 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 비해서 시작이 늦었다.

- 아기를 배고 나서 물에 들면 위험하지 않나? 해녀병 같은 것은 없나? (여느 해녀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뇌선'이라는 약을 달고 다닌다. 식품영양사인 작은딸은 약 자체가 고 카페인이기 때문에 당장 끊으라고 성화다)
"큰 아이 가졌을 때가 한겨울이었는데 바다에 들어가니 손발이 춥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애를 가지면 바다에 잘 안 들어갔지만, 그때야 그럴 여유가 있었겠나."

- 해녀 일을 너무 오래하는 거 아닌가. 환갑도 지난 나이인데.
"나는 젊은 축에 속한다. 보통 70이 넘도록 하고 80까지 하는 분도 있다. 해녀들은 노인정책의 중요한 모델이다. 60세 이상 노인들은 복지비가 많이 들어가는데 해녀들은 노력하는 것에 따라서 80까지 일을 할 수 있으니 경제활동을 남보다 더 많이 하고 복지비도 그만큼 적게 들어간다. 제주도가 해녀를 관광사업화하면서 보일러비며 각종 공과금 혜택을 주고 물질을 하러 오가는 때 photo time 같은 것을 하며 지원금도 주고 있는 것은 다 이러한 정책의 일환이다. 옛날에는 해녀를 천대했지만 가장 정년이 긴 것이 해녀 아닌가. 이렇게 따지면 나도 아직 많이 남았다."

- 한달에 몇일이나 쉬나.
"물에 들어가는 날은 한달에 보름 정도다. 옛날에는 한달 30일을 물에 들어갔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지금은 파도가 세면 장사를 나간다. 장사는 18일이다."

- 물에 가는 거 15일하고 장사가는 거 18일을 더하면 33일 아닌가?
"물에 가는 날은 장사를 빠지고 물에 가기 때문에 그렇다. 어떨 때는 한달에 하루도 안 논다. 노는 날은 물에 안 가는 날이다. 물에도 가지 않고 장사도 나가지 않는 날은 조개 파러 간다. 조개 파러 가는 날이 노는 날이다." (웃음)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달 내내 물에 들거나 장사를 하다가 쉬는 날에도 바다에 조개파러 다닌다는 해녀 엄마. 악천후에도 제주의 해녀들은 바다에 가서 일을 한다.  그래서 나는 제주의 여자들을 존경한다.

네가 아프면 내가 웃음을 잃는다

- 제일 속썩인 자식은 누구였나?
"제일 속썩였다기보다는 가장 걱정스러웠던 자식이 막내였다. 아픈 건 어쩔 수 없지. 태어나서 3개월때부터 급성폐렴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100일도 되기 전서부터 아프기 시작한 것이 15~16년 병을 바꿔가며 앓았다. 마지막 수술을 했던 것이 대학교 때니까 20살이었다. 그때는 의료보험도 없을 때니 돈도 적잖이 들었고. 당시에는 대학도 돈 없어 못 보낼 때라 이웃들이 '당신 아들은 나중에 대학 안 보내줘도 섭섭하지 않겠다'고 놀리기도 했다."

- 자식 키우면서 가장 기쁠 때는
"막내가 수술로 살아나고 소아마비처럼 다리를 절뚝이지 않도록 수술이 성공했을 때. 3살 때 유리창에서 떨어져서 동맥이 잘려나갈 때가 있었는데 그때 신경을 상해서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 크기가 현저하게 차이가 났다. 때문에 제대로 걷지도 못해 수술을 받게 되었다. 의사는 30%밖에 성공확률이 없다고 했다. 칼을 대야 하는 곳도 3군데나 됐다. 다행히 60% 정도 성공을 해서 지금은 정상인처럼 걷고 군대도 다녀 왔다."

- 아픈 자식을 너무 편애해서 다른 자식들이 원망하지는 않았나?
"솔직히 딸들에게는 미안하다. 하지만 아픈 자식에게 정이 많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만약 막내가 건강하고 딸들 중 하나가 아팠다면 정을 그쪽으로 쏟았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네가 아프면 내가 웃음을 잃고, 내가 아프면 네가 웃음을 잃는다는 사실이다."

- 아픈 아들이 장애인 취급을 받았다고 하던데.
"군청(당시 남제주군청)에서 해마다 장애인봉투가 날아왔다. 신경을 잃어서 절뚝거리고 다니니까 신고가 들어갔나 보지. 작은딸이 화가 단단히 나서 '내 동생이 왜 장애인이냐'며 봉투를 박박 찢어버리기도 했다. 친척들은 나를 위로하는 뜻에서 옛날에는 아들이 군인가면 집안이 울고불고 난리도 아닌데 군인 안 가게 되서 그래도 낫지 않느냐고 말했다. 결국 아들은 건강하게 자라서 현역으로 전역했다."

- 마지막으로 자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건강' 한마디뿐이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은 거 아닌가. 특히 막내아들은 병이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기 때문에 술이나 담배는 절대적으로 해로우니 주의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서울에 있다는 핑계로 친구들의 대소사에 신경쓰지 않고 명절 때 고향 내려와도 한번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친구들을 잘 살펴주기를 바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20여년 동안 엄마를 죽도록 고생시키고 본인도 죽다 살아난 아들(승주나무, 왼쪽)과 평생 자식 뒷바라지에 인생이 기울어버린 엄마.

동네에서 항상 회자되는 말이 있다. 당시 이웃에 살던 아무개는 사소한 병이었는데도 부모가 챙기지 않고 약만 쓰다가 끝내 숨지고 말았다. 내가 살아나리라고 생각한 동네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엄마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지옥 입구에서 되살아났다. 나의 생명은 이미 나의 것이 아니고, 내가 함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엄마와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내게 던져진 '삶의 물음'에 대답하려면 한 사람의 생을 갖고는 부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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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8 09:05

태어난 지 2분만에 인터넷 스타된 우리 아기


배고파서 이불 빨아도 바보같이 잘 몰랐어요

태어난 지 2분만에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가서 스타가 된 민준이입니다.

http://jagong.sisain.co.kr/680




시민기자, 블로거기자로 생활한 지 몇 년이 돼서 그런지 갑자기 '기자본능'이 작동해서 휴대폰 카메라로 찍었죠.
150명의 네티즌이 댓글을 달아줘서 우리 부부는 기분이 좋았지요.
웃기는 일도 많았습니다.
아기가 배고파서 이불을 빨고 있는데, 우리는 그런 것도 모르고 적당히 모유와 분유를 먹이는 바람에
아기 살이 지나치게 빠진 거에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는 한 번 먹을 때마다 130ml씩 먹는 것 같아요.
젖 빠는 시간도 한 시간이 넘구요.




그새 좀 컸습니다.
아기가 태어날 때는 울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칭얼거리는 것이 수준급이 됐지요.
아래 사진은 뭔가에 빈정이 상했다는 듯한 표정입니다^^

엄마, 아빠가 모두 제주도 출신이라 애를 제주에서 낳았는데,
아빠는 돈을 벌러 일찍 서울로 올라왔어요.
그래서 밤마다 눈에 아른거려서 미치겠어요.
자취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암튼 다음주에 제주에 가는데,
똥기저귀 당번하고 새벽에 일어나서 함께 밥도 먹여주고 하면서 친해지고 싶어요.
애가 아빠를 못 알아보고 앙앙 울면 어떡하나 걱정이 살짝 되느군요.




태어난 아기에게 이것만큼은 물려주고 싶지 않아요

태어난 아기와 최근에 있었던 쌍용차 사건이라든지 미디어법 처리 문제라든지 하는 것들이 자꾸 연결돼서 생각이 납니다.
비효율, 몰상식, 비이성, 비타협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하루하루에 사람들의 스트레스가 엄청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합리적으로 토론하고 협의하면 집단지성이 대한민국을 보우할 수 있지만, 잘나지도 않은 극소수의 몇 명이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앗아가는 시대가 아기가 걸어다닐 때는 좀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아기의 시대에 여전히 "공포의 언어"가 활개를 치는 모습을 보지 못하겠습니다.
경찰이 쌍용차 노조원에게 실탄을 제외한 모든 공격수단을 쓴 것은 국민에 대한 전쟁선포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공포의 언어"가 본격적으로 대한민국을 접수했다고 생각합니다.


엘 고어 씨의 <이성의 위기>는 "이성의 언어"와 "공포의 언어"를 구분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공포는 이성의 가장 강력한 적이다. 공포와 이성은 둘 다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지만 둘의 관계는 무척 불안정하다. 때로는 이성이 공포를 해소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공포가 이성을 마비시키는 경우가 더 많다. 미국 독립혁명이 일어나기 20년 전 에드먼드 버크가 영국에서 썼듯이 "어떠한 열정도 공포만큼이나 사람의 마음에서 행동과 이성의 힘을 그토록 효과적으로 빼앗지 못한다"
- 이성의 위기, 43쪽



저는 개인적으로 "공포의 언어"를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여기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해 도망쳤습니다.

대치동에서 월급 많이 받는 논술강사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입시 컨설팅을 하는 회사였죠. 전교 1등 하는 친구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부모님과 사장의 방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방에서 나오는 친구는 사색이 다 됩니다. 그리고 좀비처럼 이 강좌 저 강좌를 등록하는 데 수표를 남발합니다. 어머니는 옆에서 돈을 세고 있습니다.

전교 1등하는 친구가 사색의 좀비가 된 것은 간단합니다. 사장이 "공포의 언어"를 구사했기 때문입니다. 아주 간단한 매뉴얼이죠. 그 친구에게 <전국 석차>를 들이대면 됩니다. 학교가 1500여 개가 되는데, 그 중에서 1명씩만 추려도 그 학생은 전국에서 1500등이 됩니다. 서울대 입학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서 전국에서 잘 하는 친구의 내신성적과 이런 저런 실적표를 보여줍니다. 일종의 <모범답안지>인데, 이런 모범답안지를 소유하고 있는 친구들이 널렸다고 말하면 학생은 사색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팔 다리 다 잘리는 신세가 됩니다. 아주 순식간에 학생의 자긍심은 산산히 무너집니다. 이 학생에게는 약간의 오만함만 눌러주는 것이 좋습니다. 사색의 좀비가 되고 나면 값비싼 강좌(강의의 질을 보장할 수 없는)에 다급하게 등록을 합니다.

이런 행태를 1년 넘게 지켜보면서 나는 영혼이 개먹어들어가는 느낌을 받아서 어떻게든 도망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회사 저 회사 전전하다가 영혼을 구출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공포의 언어"입니다. 나는 내 자식에게 "공포의 언어"가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조차도 알려주기 싫습니다. 역사책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그 언어가 사실은 아버지의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도록 세상을 "이성의 언어"로 바꿔놓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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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9 14:26

지하철 9호선 제대로 이용하려면 "급행시스템"을 알아야 한다


지하철 9호선을 탄 지 이틀 됐습니다.
화곡역에서 여의도역까지 가서 고속버스터미널까지 가는 코스가 출근코스 안에 있습니다.

지하철 9호선은 급행열차와 일반열차로 구분돼 있습니다.
이 차는 개찰구가 구분돼 있습니다.
급행열차가 지나갈 때는 일반열차는 3분 정도 정차해 있다가 급행열차가 한참을 가고 나서야 출발을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일반열차를 타고 장거리를 가면 시간을 많이 낭비하게 됩니다.

급행열차는 출발지와 목적지 두 군데만 가는 것이 아닙니다.
중간 중간에 서는 정차역이 있습니다. 이 지점을 알면 좀 더 짧은 시간에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여의도역에서 애초에 급행열차를 기다려 고속버스터미널까지 가는 게 좋습니다.

▲ 급행열차의 역을 잘 기억해 두면 편리합니다. 김포공항-가양-염창-당산-여의도-노량진-동작-고속버스터미널입니다. 2~3정거장 중 하나 꼴로 급행역이 있습니다. 급행열차 코스를 이용하면 좀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고백하건데, 바보같이 저는 일반 열차를 타고 여의도에서 고속버스터미널까지 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전에 비해서 시간 이득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내일부터는 처음부터 급행열차를 타서 좀 더 일찍 목적지에 도달하는 기쁨을 누려보고자 합니다.
지하철 9호선의 가장 큰 특징인 <급행시스템>만 알아도 대성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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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3 10:31

노무현 덕에 번 돈 노무현에게 기부합니다

삼성 이건희 1조원보다 소중한 내돈 25만원을 기부합니다


▲ 누리꾼들이 '희망모금'을 통해 4시간 만에 3천만원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경향과 한겨레신문에 전면광고를 실을 수 있게 됐습니다. 이 누리꾼들이 노무현 정신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 우선 노무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는 존칭은 생략하고 '일반명사' 노무현을 쓰기로 했습니다. 자연에서 나고 자연으로 돌아간 자연인 노무현에게 어울리는 말은 이제 대통령이 아니라 '자연인' 혹은 '일반명사' 노무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시사IN 고재열 기자가 100만원을 기부했습니다.
고재열의 독설닷컴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10일 동안 무려 2백만 명이 방문했습니다.
이로 인해 발생한 광고수익 100만원을 내놓겠다는 말입니다.
저도 노무현 서거 국면에서 약 30만명 정도가 다녀갔습니다. 그로 인해 생긴 광고수익 200$(6월 3일 환율기준 24만5천원)을 기부하겠습니다. 월급쟁이 고재열 기자에게 100만원이 적은 돈이 아니듯, 2개월 출산을 앞두었지만 변변한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닌 일개 블로거에게 25만원은 적은 돈이 아닙니다. 노무현에게 큰 빚을 졌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가 돌아감으로써 나는 그의 지배에 있었고 그에게 큰 빚을 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여개에 이르는 글을 썼던 것이고, 앞으로 오랜 시간 동안 노무현이라는 주제를 고민해볼 계획입니다.
특히 절박한 상황에서 엷은 지갑을 열고 부담을 나눌 때가 진정성이 살아나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유가 있을 때를 기다려 기부를 하는 것은 이미 '진실'은 아니겠죠. 100만원이나 25만원은 아니지만 되도록 많은 분들이 소액을 기부해서 취지가 잘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 노무현 대통령 추모 기간 동안 블로그 등에 20여개의 글을 게재하고 30만명 가까운 방문자를 기록해 200$ 정도의 광고수입을 기록했습니다. 노무현으로 번 돈이므로 당연히 노무현에게 기부하겠습니다.


노무현을 계승하는 방법도 '노무현 정신으로'

노무현 대통령 추모 기간 동안 전국에서 500만명이 넘는 추모 인파가 모이며 노무현에 대한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노무현 기념관이나 기념회 등 노무현의 이름이 붙은 각종 물질적 정신적 유물들이 생겨나게 될 것 같습니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노무현의 정신이 깔아놓은 길을 따라 형성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독설닷컴의 <노무현 민주주의재단> 제안은 정신이 번쩍 나게 하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독설닷컴은 노무현 정신의 계승이 여러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고 썼습니다.

노무현 정신을 정치적으로 계승할 친노 세력은 정치를 하고 
노무현 추모를 할 사람은 '노무현 기념사업회'를 맡고 
비친노 성향의 사람들이 노무현의 민주주의 정신을 확장시키는 '노무현 민주주의 재단'을 맡는 것입니다. 
- 독설닷컴  <'노무현 재단' 설립을 위한 '제2 희망돼지' 운동을 제안합니다> 일부


이름도 <희망돼지 시즌2>로 제안했더군요. 희망돼지는 노무현이 대통령 후보 당시 정치자금을 쓰지 않고 시민의 자발적인 모금으로 대선 경쟁을 치를 수 있었던 힘이었습니다. 희망돼지에는 장삼이사의 염원이 담겨 있으니 노무현 정신에 합당하고 민주주의와 어울립니다. 다만 <희망돼지> 캠페인이 법적인 논쟁을 불러 일으켰고, 다분히 정치적인 이미지가 담겨 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 확신은 못하겠습니다.

저는 단순하게 <노무현 전당 벽돌모으기>로 붙여 보았습니다.
노무현 정신은 여러 갈래로 전개될 것이 분명한데,
크게는 노무현 기념관 등을 포함한 물리적인 계승과
노무현 정신과 노무현의 못다 이룬 꿈을 생각하는 정신적인 계승이 있습니다.
우리는 물리적인 전당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전당도 함께 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전당에 들어가는 벽돌을 시민의 자발적인 모금을 통해서 만들고
전당을 어떻게 만들고 운영할지 등에 관한 자잘한 이야기들까지 서로의 의견을 통해서 만들어가는 것이 노무현 정신에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고재열 기자와 통화를 해서 반응을 살폈는데, 노사모나 추모위 등 노무현의 곁에 계신 분들에게서 신선하다는 평가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분들은 노무현 기념관 정도 물리적인 유산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민주주의 재단과 같은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고 합니다.

▲ 시사IN 제90호 추모 특집호에서 우석훈은 "서울광장의 차 벽을 보면 누가 노무현을 죽였는지 명확하다. 그 차 벽에는 한국 메인스트림의 모든 고민이 들어 있다. 자, 이제 포위망을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인가? 그게 죽어서야 겨우 그 포위망을 둟은 노무현이 살아 있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라고 썼습니다. 저는 국민들도 500만의 행렬로 차벽을 뚫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마음이 한몸처럼 모이면 차벽은 허물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이것에 제가 생각하는 "노무현 정신"입니다.(사진 :오마이뉴스)


노무현의 정신을 기리는 건물이 사람 사는 세상에 세워지고, 사람들이 한푼 두푼 모아서 절대로 허물어지지 않는 튼튼한 건물이 되고, 그 안에서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와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큰 뜻에서는 고재열 기자의 제안에 동의합니다. 다만 사소한 부분에서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면, 공신력 있는 계좌를 빨리 만들어서 모금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생각하는 마음이 한결같지만, 시간을 오래 끌어서 좋을 것은 없습니다. 그때 가면 마음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지갑에서 돈이 나가는 문제이기 때문에 분위기가 형성되었을 때 초반에 속도 있게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고재열 기자는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차마 직접 계좌를 만들 수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에 대한 지혜로운 생각들이 모아져야 할 것 같습니다.


※ 이 프로젝트는 독설닷컴 고재열 기자가 최초로 제안했고 아직 공식계좌도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입니다. 저 역시 아무런 대표성이 없기 때문에 계좌를 제시해드릴 수 없지만, 진행상황을 보고 공지를 해드리겠습니다. 이 캠페인에 참여할 의향이 있으신 분들은 승주나무의 이메일(dajak97@gmail.com )로 의사를 전달해주시면 소식이 나오는 대로 메일을 통해 공지해드리겠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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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5 11:22

초등학생인 나 대신 의자를 때린 고마운 선생님



▲ 지난 2003년 학교법인 동일학원의 사학비리를 폭로했다는 이유로 직위해제됐다가 2006년 6월 28일 학교 측으로부터 파면 통고까지 받은 조연희씨(42·여·전 동일여고 교사)의 ‘길거리 문학수업’을 벌이고 있는 모습.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뜻을 품고 쫓겨난 선생님들이 많다. 그 선생님들을 찾아서 다시 교단에 세워야 한다. (사진 : 경향신문)



KBS <TV동화 행복한 세상>의 작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 프로그램과는 인연이 있는데, 얼마 전 이웃간의 불화를 해결한 이야기를 오마이뉴스에 실었다가 담당 작가로부터 원작을 사용해 방송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 원작 허락을 해주었다.
원작료를 적잖이 받아 마음도 지갑도 두둑해진 하루였다.

<내 이야기를 동화로 만든 애니메이션>
<TV동화 행복한 세상> "완벽한 이웃이 되는 법"(클릭)


그 프로그램의 담당작가가 다시 연락이 온 것이다.
블로그에서 글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것을 쓸 수 있을까 하는 문의였다.
내 학창시절 선생님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만난 선생님이 인생을 좌우한다(클릭)

내 인생에서 최초로 의미 있는 기억이 아닐까 생각하는 사건이다. 이른바 <매로 의자를 때린 선생님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 내게는 나쁜 습관이 하나 있었다. 엉덩이를 들썩들썩거려서 자꾸 책상 옆으로 삐죽이 나오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몇 번의 주의를 주셨다. 하지만 엉덩이는 말을 안 들어 다시금 책상 옆으로 나오곤 했다.
그 때 선생님이 수업을 하다 말고 엄한 눈초리로 몽둥이를 들고 제게로 다가왔다.
몽둥이를 들고 무서운 표정으로 나에게 오는 선생님에 대한 공포감. 아직도 아찔할 정도다.
그 다음에 대단한 반전이 있다.

나는 눈을 감고 손바닥을 올렸고, 선생님은 매를 내리치셨다.

"철썩"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매를 맞지 않다. 매를 맞은 것은 다름 아닌 '의자'였다.
의자를 매로 때리며 "왜 자꾸 승주나무가 지적을 받게 옆으로 나오느냐"며 한참 의자에게 매질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은 나에게 매질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자를 때렸다. 선생님이 의자를 때린 이유를 이해하는 데는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선생님의 진심이 전해오고 나서는 그 때의 일을 잊을 수가 없다.


아마 그때 선생님께 매를 맞았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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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1 12:40

예쁜 화장실 탐방기

남도 예향 순천에는 화장실도 예쁘더군요.
제주가 고향인 저는 관광지에 가면 화장실을 가장 먼저 구경합니다.
화장실을 보면 그 곳의 감수성을 읽을 수 있거든요.
화장실을 일을 보는 곳이라거나 냄새 나는 곳 정도로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공간이 아니라 그야말로 뒷간이 되어 버립니다.

서울에서는 N타워 화장실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너무 화려해서 좀 민망하기는 했지만, 가운데 분수 같은 조그만 조형물이 있고
유리창에는 각 도시의 위치가 박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서울 남산 N서울타워 전망대의 ‘하늘화장실’은 시원한 전망 때문에 유명합니다. 저도 N타워에 가봤는데 화장실이 가장 인상적이더군요.

두 화장실 모두 남자 화장실의 벽면이 안에서만 내다볼 수 있는 통유리로 되어 있어 탁 트인 전경을 즐길 수 있습니다. 용변을 볼 때도 기분이 좋고, 손을 씻을 때도 역시 좋습니다.



예향 순천에 갔더니 화장실 현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 마치 수녀님처럼 정갈한 여자화장실의 현판인데 처음에는 여기가 공방 입구인가 싶었습니다. 좀 나긋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표현해 화장실의 활용 폭이 남자화장실에 비해 훨씬 넓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 이에 비해 남자화장실의 남자는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는 것을 표현했네요. 좀 급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남자들은 화장실에 대한 감수성이 여자들에 비해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런 스피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 이 간판의 글씨체를 보니 문득 생각난 이미지가 있습니다.

▲ 마치 글자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게 괴물의 포스터가 생각났습니다.


▲ 겉모양만 그런 게 아니라 화장실의 작동 원리 또한 예쁘기 그지 없네요. 무급수/무방류 순환수세식 화장실이라고 합니다.

순환수세식 화장실을 좀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 관련 설명을 보니 "5가지 공정을 거치게 되는 데 변기에 배출된 분뇨 오수는 1차 공정과정인 저류조로 옮겨지며 스크린에서 비교적 큰 고형물이 제거되며, 분뇨 오수를 저장하고 다음 단계인 제1반응조로 이송된다.
1차 반응조에서는 유기물이 1차로 제거되며, 3번째 단계인 유량저장조에 전체 시스템의 유량 조정된다.
이 단계를 거친 뒤 다음 단계인 2차 반응조로 옮겨지게 되는 데 이 곳에서는 바이오우드칩에 의한 살수여상방식으로 유기물이 2차 제거되며 마지막 단계인 탈색조로 이송된다.

탈색조에서는 처리수의 잔류 색소 및 잔류 유기물이 제거되고 저장조에 처리수가 저장된다. 이 단계까지 거친 분뇨 및 오수는 최초 500∼2000ppm이던 BOD가 1급수 수준인 5ppm까지 떨어지게 된다. 그렇게 해서 물고기가 살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해지는 것. 이 물을 급수펌프를 통해 순환시켜 다시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되어 있네요. 용어는 어렵지만, 자연친화적인 화장실 시스템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무방류 순환수세식화장실’의 기술적 원리는 분뇨를 ‘바이오우드칩(Bio-Woodchip)’에 서식하는 미생물에 의해 정화해 재사용하는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용한 물은 정화해 재사용토록 하고, 유기물은 미생물에 의해 자연 소멸시키는 첨단 시스템인 거죠. 제주도는 예부터 화장실의 시스템이 매우 발달돼 있었는데, 화장실에서 돼지를 기르면서 자연스럽게 분뇨를 처리하고 돼지가 만들어준 비료를 논밭에 뿌려 흙을 살지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화장실에서 기른 돼지의 육질은 맛이 썩 좋아 지금도 '똥돼지'라는 브랜드로 팔려나가고 있습니다.

외양부터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많은 배려를 하고 있는 순천만 화장실에 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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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8 10:01

한달에 33일 일하는 '울 엄마'를 인터뷰하다


어버이날에 드릴 선물을 고르는 게 쉽지 않습니다. 전화해서 필요한 것을 물어보면 '일없다'고 합니다. 지갑을 사드리려고 했는데 작은누나가 "내가 사준 지갑도 봉투 째로 있다"며 한사코 말립니다. 예전에 엄마 인터뷰를 오마이뉴스에 올린 후에 OBS에서 가족 특집으로 인터뷰를 하겠다고 연락이 왔는데, 울엄마는 "다음에 하자"며 만류를 합니다. 울엄마와 내가 TV에 나올 뻔한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군복무를 하고 있을 때, KBS 2TV의 '청춘 신고합니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우리 부대로 오게 돼 사연을 적으라는 '명령'이 있어서 사연을 적었는데, KBS에서 엄마를 초대하고 싶다며 연락을 해왔습니다. 엄마가 부대로 오면 특별휴가도 얻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끝내 거절을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1주기가 끝나고 서울로 모시려고 했지만, 다니는 가게의 '번차례'가 안 맞는다며 오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아들 부담줄까봐 그러는 겁니다. 7월에 아기가 태어나는데 손자가 보고 싶었는지 제주도에서 아기를 낳으라고 하시네요. 그것도 직접 말씀하지 않으시고 제가 "장모님(제주도)도 제주에서 낳으면 좋겠다고 하시는데..."라고 말을 끌었더니, "제주에서 낳으면 나야 좋지 뭐"하면서 예전과는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어버이날을 맞아 미역국도 카네이션도 못 달아드리는 미안한 마음을 이 글로나마 달래 봅니다. 



해녀 일을 하는 제주 토박이 고순자 씨(63세)는 자식 셋을 키운 평범한 어머니다. 1남4녀의 넷째 딸로 태어났지만 제주 4.3으로 부모를 잃어 어려서부터 받을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하고 그 대신 엄격한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19세에 해녀 일을 시작해 26세에 시집을 갔고, 남의 집 살이 13년 만에 집을 장만했으며, 작년에 남편과 사별했다. 인터뷰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아들이 추석에 맞춰 낙향한 13~14일 이틀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성산포 집과 슈퍼 가는 길목, 부둣가 해녀의 집 등지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이제까지 어떤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았으며, 최초로 응한 인터뷰는 바로 아들과의 인터뷰다. 자식 키우면서 가장 기쁠 때가 언제인지 묻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아들의 생환'이라고 말했다. 어렵게 얻은 막내아들은 태어난지 3개월 만에 급성폐렴과 임파성 결핵 등 생사를 위협하는 굵직한 병마만도 대여섯 차례나 맞았다. 장기입원 등 수술을 한 것은 두 자리가 훌쩍 넘어갔다. 대학 시절 폐종양 수술을 마지막으로 병마의 기나긴 위협이 한풀 꺾였다. 이런 까닭으로 그는 아기가 자신의 눈을 속이는 것이 아닌가 항상 두려워했다고 한다. 금방 하늘나라로 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늘 잠자다가 내일 없어져버리지 않을까 하다가 다음날 잠에서 깨면 살아있을 때가 가장 기쁘고 뿌듯한 순간이었다"고 술회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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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가 45년 동안 입고 다녔던 고무 해녀복. 해녀복은 오래 입으면 5~6년 입는데, 이 옷은 6년도 넘은 옷이다. 제주 해녀들은 모두 검은 고무옷을 입고 바다에 다닌다.

45년 해녀 인생

- 해녀 일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소라공장에서 7년 일하고 23세에 육지(제주도에서는 한반도 대륙을 '육지'라고 부른다)에서 몇 년 살다 왔지만 대체로 19세경부터다. 할머니는 가정살림하면서 해녀 일을 해도 늦지 않는다면서 그 일을 못하게 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 비해서 시작이 늦었다.

- 아기를 배고 나서 물에 들면 위험하지 않나? 해녀병 같은 것은 없나? (여느 해녀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뇌선'이라는 약을 달고 다닌다. 식품영양사인 작은딸은 약 자체가 고 카페인이기 때문에 당장 끊으라고 성화다)
"큰 아이 가졌을 때가 한겨울이었는데 바다에 들어가니 손발이 춥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애를 가지면 바다에 잘 안 들어갔지만, 그때야 그럴 여유가 있었겠나."

- 해녀 일을 너무 오래하는 거 아닌가. 환갑도 지난 나이인데.
"나는 젊은 축에 속한다. 보통 70이 넘도록 하고 80까지 하는 분도 있다. 해녀들은 노인정책의 중요한 모델이다. 60세 이상 노인들은 복지비가 많이 들어가는데 해녀들은 노력하는 것에 따라서 80까지 일을 할 수 있으니 경제활동을 남보다 더 많이 하고 복지비도 그만큼 적게 들어간다. 제주도가 해녀를 관광사업화하면서 보일러비며 각종 공과금 혜택을 주고 물질을 하러 오가는 때 photo time 같은 것을 하며 지원금도 주고 있는 것은 다 이러한 정책의 일환이다. 옛날에는 해녀를 천대했지만 가장 정년이 긴 것이 해녀 아닌가. 이렇게 따지면 나도 아직 많이 남았다."

- 한달에 몇일이나 쉬나.
"물에 들어가는 날은 한달에 보름 정도다. 옛날에는 한달 30일을 물에 들어갔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지금은 파도가 세면 장사를 나간다. 장사는 18일이다."

- 물에 가는 거 15일하고 장사가는 거 18일을 더하면 33일 아닌가?
"물에 가는 날은 장사를 빠지고 물에 가기 때문에 그렇다. 어떨 때는 한달에 하루도 안 논다. 노는 날은 물에 안 가는 날이다. 물에도 가지 않고 장사도 나가지 않는 날은 조개 파러 간다. 조개 파러 가는 날이 노는 날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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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내내 물에 들거나 장사를 하다가 쉬는 날에도 바다에 조개파러 다닌다는 해녀 엄마. 악천후에도 제주의 해녀들은 바다에 가서 일을 한다.  그래서 나는 제주의 여자들을 존경한다.

네가 아프면 내가 웃음을 잃는다

- 제일 속썩인 자식은 누구였나?
"제일 속썩였다기보다는 가장 걱정스러웠던 자식이 막내였다. 아픈 건 어쩔 수 없지. 태어나서 3개월때부터 급성폐렴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100일도 되기 전서부터 아프기 시작한 것이 15~16년 병을 바꿔가며 앓았다. 마지막 수술을 했던 것이 대학교 때니까 20살이었다. 그때는 의료보험도 없을 때니 돈도 적잖이 들었고. 당시에는 대학도 돈 없어 못 보낼 때라 이웃들이 '당신 아들은 나중에 대학 안 보내줘도 섭섭하지 않겠다'고 놀리기도 했다."

- 자식 키우면서 가장 기쁠 때는
"막내가 수술로 살아나고 소아마비처럼 다리를 절뚝이지 않도록 수술이 성공했을 때. 3살 때 유리창에서 떨어져서 동맥이 잘려나갈 때가 있었는데 그때 신경을 상해서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 크기가 현저하게 차이가 났다. 때문에 제대로 걷지도 못해 수술을 받게 되었다. 의사는 30%밖에 성공확률이 없다고 했다. 칼을 대야 하는 곳도 3군데나 됐다. 다행히 60% 정도 성공을 해서 지금은 정상인처럼 걷고 군대도 다녀 왔다."

- 아픈 자식을 너무 편애해서 다른 자식들이 원망하지는 않았나?
"솔직히 딸들에게는 미안하다. 하지만 아픈 자식에게 정이 많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만약 막내가 건강하고 딸들 중 하나가 아팠다면 정을 그쪽으로 쏟았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네가 아프면 내가 웃음을 잃고, 내가 아프면 네가 웃음을 잃는다는 사실이다."

- 아픈 아들이 장애인 취급을 받았다고 하던데.
"군청(당시 남제주군청)에서 해마다 장애인봉투가 날아왔다. 신경을 잃어서 절뚝거리고 다니니까 신고가 들어갔나 보지. 작은딸이 화가 단단히 나서 '내 동생이 왜 장애인이냐'며 봉투를 박박 찢어버리기도 했다. 친척들은 나를 위로하는 뜻에서 옛날에는 아들이 군인가면 집안이 울고불고 난리도 아닌데 군인 안 가게 되서 그래도 낫지 않느냐고 말했다. 결국 아들은 건강하게 자라서 현역으로 전역했다."

- 마지막으로 자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건강' 한마디뿐이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은 거 아닌가. 특히 막내아들은 병이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기 때문에 술이나 담배는 절대적으로 해로우니 주의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서울에 있다는 핑계로 친구들의 대소사에 신경쓰지 않고 명절 때 고향 내려와도 한번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친구들을 잘 살펴주기를 바란다.

▲ 20여년 동안 엄마를 죽도록 고생시키고 본인도 죽다 살아난 아들(승주나무, 왼쪽)과 평생 자식 뒷바라지에 인생이 기울어버린 엄마.


동네에서 항상 회자되는 말이 있다. 당시 이웃에 살던 아무개는 사소한 병이었는데도 부모가 챙기지 않고 약만 쓰다가 끝내 숨지고 말았다. 내가 살아나리라고 생각한 동네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엄마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지옥 입구에서 되살아났다. 나의 생명은 이미 나의 것이 아니고, 내가 함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엄마와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내게 던져진 '삶의 물음'에 대답하려면 한 사람의 생을 갖고는 부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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