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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뉴스'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9/17 한 달에 33일 일하는 억척스런 엄마를 인터뷰하다 (2)
  2. 2008/09/16 슬로우 뉴스(slow news) 운동 (3)
2008/09/17 18:57

한 달에 33일 일하는 억척스런 엄마를 인터뷰하다

슬로우뉴스 첫 번째 기획으로 특별한 인터뷰를 선보인다. 인터뷰어는 당신의 '아들'이며, 인터뷰이는 아들의 '엄마'다. 지금까지 해본 인터뷰 중에서 가장 의미 있지만, 부끄러운 인터뷰가 될 것 같다. 나도 모르는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의 가장 오랜 증언자라면 가장 중요한 인터뷰이가 되어야 하건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인터뷰'란 '나'보다는 '우리' 혹은 '남들'에게 더 의미 있는 행위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오래도록 나에게 여운을 남길 나와 엄마를 위한 인터뷰를 슬로우 뉴스의 첫 번째 기획으로 삼은 이유다. - 기자 주


해녀 일을 하는 제주 토박이 고순자 씨(63세)는 자식 셋을 키운 평범한 어머니다. 1남4녀의 넷째 딸로 태어났지만 제주 4.3으로 부모를 잃어 어려서부터 받을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하고 그 대신 엄격한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19세에 해녀 일을 시작해 26세에 시집을 갔고, 남의 집 살이 13년 만에 집을 장만했으며, 작년에 남편과 사별했다. 인터뷰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아들이 추석에 맞춰 낙향한 13~14일 이틀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성산포 집과 슈퍼 가는 길목, 부둣가 해녀의 집 등지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이제까지 어떤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았으며, 최초로 응한 인터뷰는 바로 아들과의 인터뷰다. 자식 키우면서 가장 기쁠 때가 언제인지 묻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아들의 생환'이라고 말했다. 어렵게 얻은 막내아들은 태어난지 3개월 만에 급성폐렴과 임파성 결핵 등 생사를 위협하는 굵직한 병마만도 대여섯 차례나 맞았다. 장기입원 등 수술을 한 것은 두 자리가 훌쩍 넘어갔다. 대학 시절 폐종양 수술을 마지막으로 병마의 기나긴 위협이 한풀 꺾였다. 이런 까닭으로 그는 아기가 자신의 눈을 속이는 것이 아닌가 항상 두려워했다고 한다. 금방 하늘나라로 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늘 잠자다가 내일 없어져버리지 않을까 하다가 다음날 잠에서 깨면 살아있을 때가 가장 기쁘고 뿌듯한 순간이었다"고 술회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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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가 45년 동안 입고 다녔던 고무 해녀복. 해녀복은 오래 입으면 5~6년 입는데, 이 옷은 6년도 넘은 옷이다. 제주 해녀들은 모두 검은 고무옷을 입고 바다에 다닌다.

45년 해녀 인생

- 해녀 일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소라공장에서 7년 일하고 23세에 육지(제주도에서는 한반도 대륙을 '육지'라고 부른다)에서 몇 년 살다 왔지만 대체로 19세경부터다. 할머니는 가정살림하면서 해녀 일을 해도 늦지 않는다면서 그 일을 못하게 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 비해서 시작이 늦었다.

- 아기를 배고 나서 물에 들면 위험하지 않나? 해녀병 같은 것은 없나? (여느 해녀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뇌선'이라는 약을 달고 다닌다. 식품영양사인 작은딸은 약 자체가 고 카페인이기 때문에 당장 끊으라고 성화다)
"큰 아이 가졌을 때가 한겨울이었는데 바다에 들어가니 손발이 춥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애를 가지면 바다에 잘 안 들어갔지만, 그때야 그럴 여유가 있었겠나."

- 해녀 일을 너무 오래하는 거 아닌가. 환갑도 지난 나이인데.
"나는 젊은 축에 속한다. 보통 70이 넘도록 하고 80까지 하는 분도 있다. 해녀들은 노인정책의 중요한 모델이다. 60세 이상 노인들은 복지비가 많이 들어가는데 해녀들은 노력하는 것에 따라서 80까지 일을 할 수 있으니 경제활동을 남보다 더 많이 하고 복지비도 그만큼 적게 들어간다. 제주도가 해녀를 관광사업화하면서 보일러비며 각종 공과금 혜택을 주고 물질을 하러 오가는 때 photo time 같은 것을 하며 지원금도 주고 있는 것은 다 이러한 정책의 일환이다. 옛날에는 해녀를 천대했지만 가장 정년이 긴 것이 해녀 아닌가. 이렇게 따지면 나도 아직 많이 남았다."

- 한달에 몇일이나 쉬나.
"물에 들어가는 날은 한달에 보름 정도다. 옛날에는 한달 30일을 물에 들어갔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지금은 파도가 세면 장사를 나간다. 장사는 18일이다."

- 물에 가는 거 15일하고 장사가는 거 18일을 더하면 33일 아닌가?
"물에 가는 날은 장사를 빠지고 물에 가기 때문에 그렇다. 어떨 때는 한달에 하루도 안 논다. 노는 날은 물에 안 가는 날이다. 물에도 가지 않고 장사도 나가지 않는 날은 조개 파러 간다. 조개 파러 가는 날이 노는 날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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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내내 물에 들거나 장사를 하다가 쉬는 날에도 바다에 조개파러 다닌다는 해녀 엄마. 악천후에도 제주의 해녀들은 바다에 가서 일을 한다.  그래서 나는 제주의 여자들을 존경한다.

네가 아프면 내가 웃음을 잃는다

- 제일 속썩인 자식은 누구였나?
"제일 속썩였다기보다는 가장 걱정스러웠던 자식이 막내였다. 아픈 건 어쩔 수 없지. 태어나서 3개월때부터 급성폐렴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100일도 되기 전서부터 아프기 시작한 것이 15~16년 병을 바꿔가며 앓았다. 마지막 수술을 했던 것이 대학교 때니까 20살이었다. 그때는 의료보험도 없을 때니 돈도 적잖이 들었고. 당시에는 대학도 돈 없어 못 보낼 때라 이웃들이 '당신 아들은 나중에 대학 안 보내줘도 섭섭하지 않겠다'고 놀리기도 했다."

- 자식 키우면서 가장 기쁠 때는
"막내가 수술로 살아나고 소아마비처럼 다리를 절뚝이지 않도록 수술이 성공했을 때. 3살 때 유리창에서 떨어져서 동맥이 잘려나갈 때가 있었는데 그때 신경을 상해서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 크기가 현저하게 차이가 났다. 때문에 제대로 걷지도 못해 수술을 받게 되었다. 의사는 30%밖에 성공확률이 없다고 했다. 칼을 대야 하는 곳도 3군데나 됐다. 다행히 60% 정도 성공을 해서 지금은 정상인처럼 걷고 군대도 다녀 왔다."

- 아픈 자식을 너무 편애해서 다른 자식들이 원망하지는 않았나?
"솔직히 딸들에게는 미안하다. 하지만 아픈 자식에게 정이 많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만약 막내가 건강하고 딸들 중 하나가 아팠다면 정을 그쪽으로 쏟았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네가 아프면 내가 웃음을 잃고, 내가 아프면 네가 웃음을 잃는다는 사실이다."

- 아픈 아들이 장애인 취급을 받았다고 하던데.
"군청(당시 남제주군청)에서 해마다 장애인봉투가 날아왔다. 신경을 잃어서 절뚝거리고 다니니까 신고가 들어갔나 보지. 작은딸이 화가 단단히 나서 '내 동생이 왜 장애인이냐'며 봉투를 박박 찢어버리기도 했다. 친척들은 나를 위로하는 뜻에서 옛날에는 아들이 군인가면 집안이 울고불고 난리도 아닌데 군인 안 가게 되서 그래도 낫지 않느냐고 말했다. 결국 아들은 건강하게 자라서 현역으로 전역했다."

- 마지막으로 자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건강' 한마디뿐이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은 거 아닌가. 특히 막내아들은 병이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기 때문에 술이나 담배는 절대적으로 해로우니 주의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서울에 있다는 핑계로 친구들의 대소사에 신경쓰지 않고 명절 때 고향 내려와도 한번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친구들을 잘 살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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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여년 동안 엄마를 죽도록 고생시키고 본인도 죽다 살아난 아들(승주나무, 왼쪽)과 평생 자식 뒷바라지에 인생이 기울어버린 엄마.

동네에서 항상 회자되는 말이 있다. 당시 이웃에 살던 아무개는 사소한 병이었는데도 부모가 챙기지 않고 약만 쓰다가 끝내 숨지고 말았다. 내가 살아나리라고 생각한 동네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엄마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지옥 입구에서 되살아났다. 나의 생명은 이미 나의 것이 아니고, 내가 함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엄마와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내게 던져진 '삶의 물음'에 대답하려면 한 사람의 생을 갖고는 부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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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6 21:01

슬로우 뉴스(slow news) 운동

slow news가 요청되는 시대

slow와 news를 함께 쓰는 것은 언어도단이자 모순이다.
속도경쟁을 부추기는 기성의 언론들에게는 슬로우 뉴스를 기대할 수 없다. 사건이 생긴 날 저녁에 이미 뉴스의 생명이 기울어지며, 다음 날 저녁이 되면 그 뉴스는 완전히 사망한다. 
하지만 그것은 과도한 속도에 길들여진 우리들의 관성일 뿐 뉴스란 반드시 ‘속보’라는 이미지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뉴스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성찰부재'이다. 시사IN의 1주년 기념식에 초대가수로 무대에 선 정태춘 씨는 신문을 끊은지 한참 됐다고 했다. 신문은 태교에도 안 좋기로 소문이 났고, 예술가나 학자에게도 필요악일 뿐이다. 그래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꼭 신문을 통해서 알아야 하느냐는 자조도 나온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각인된 신문은 '사기' 그 자체다. 신문은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는 척하면서도 실은 하나도 새롭지 않을 때가 많다. 신문을 한달 정도 보다 보면 지겨워서 덮어버리고 싶을 때가 많다. 신문을 놓지 못하는 것은 오로지 '관성' 때문이다. 미국의 양심인 노엄 촘스키는 신문을 정의하며 "가치관과 신념, 행동규범을 간섭하면서 사회의 제도적 구조 속으로 대중들을 통합시키는 기능을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고를 갖지 못하고 대충 현실에 영합하며 살도록 조장하는 게 신문이라는 이야기다. 예술가 같은 초감수성자들이나 지식인들이 신문을 멀리하는 이유로 충분하다.

신문을 통해 대중을 선동하고 물건을 팔아먹을 수 있다는 말은 그만큼 신문이 대중화돼 있다는 말이며 대중과 가깝다는 말이다. 때문에 관점만 달리한다면 얼마든지 대중에게 성찰적인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책을 읽을 여유가 되지 않는(사실 이것은 거짓말이지만) 사람에게는 좀 느린 속도로 걷는 뉴스가 정신건강에 좋을 것이다. 문제는 느린 뉴스를 어떻게 사람들에게 전해주느냐이다. 실로 슬로우 뉴스가 요청되는 시대다.


슬로우 뉴스slow news 운동

걷기를 즐겨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걷는 것이 뛰는 것보다 속도는 느리지만 섬광같은 영감이 지나가는 속도는 뛰는 데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래서 누군가는 “걷기는 온몸으로 하는 기도요, 두 발로 추구하는 선(禪)”이라고 말했다.

슬로우 푸드는 우리 몸에 붙어서 우리 몸이 되지만,
패스트 푸드는 생김새만 음식이지 몸에 붙었다 이내 쓸려나가버리거나 몸을 괴롭히기만 한다. 슬로우를 회복하는 것은 우리 인식의 섬광과 자생적 진화를 회복할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속도가 빨라지고 기술이 발전되면서 사람들의 인식 수준은 점점 외부 사물에 의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인식의 진화는 그만큼 더뎌지고 있다. 다만 인식을 독점한 사람들에 의해 세상은 점점 불균형해져만 간다.

슬로우 뉴스는 기존의 뉴스 개념을 거부한다. 시간 개념을 완전히 거스르지는 않지만, 집착하지는 않는다.
슬로우 뉴스는 당장 클릭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곱씹으며 찬찬히 생각해볼 수 있게 한, 인터넷 기반과는 매우 이질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정서는 속도가 아니라 슬로우에 더 반응하며, 속도에 환멸을 느낀 많은 사람들은 느린 것을 갈망하리라는 것을 믿는다.
이미 유통되고 있는 살아가는 이야기나 생활글, 책에 관한 글들은 슬로우 뉴스의 조건을 만족시킨다.



30년 동안 기자질을 해온 서명숙이라는 여성의 글을 읽으면서 나부터 슬로우 뉴스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제주 걷기 여행>은 저널리스트의 탈 저널리즘적 도전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이런 조용한 일탈에서 변화는 시작된다. 나는 기성 기자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기사를 써왔지만, 그들과 마찬가지로 속도경쟁을 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앞으로도 속보가 나의 기사에서 사라지는 날은 없겠지만, 조용히 반 속보적인 기사를 선보이려 한다.

만약 그것이 정말 가치 있는 행보라면 먼저 그 일을 하고 있거나 함께 하는 사람이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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