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에 해당되는 글 3건
- 2008/09/30 '촛불'을 가장 정확히 분석한 외국인 (1)
- 2008/06/29 유모차 엄마에 대한 다른 엄마의 입장 (5)
- 2008/05/31 군복이 이렇게 아름다워보인 적은 난생 처음이다 (10)
▲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만났던 촛불남매
세계적인 촛불, 세계적인 공간 광화문, 청계천
적절한 동기와 도구가 주어졌을 때 그룹 행동이 갖는 힘은 폭발적이다. 촛불문화제의 적절한 동기는 '쇠고기 협상'이었고, 절적한 도구는 '촛불'이었다. 그리고 이 이면에 흐르는 문맥이 있는데, 그것은 변화이다. 10년 전만 해도 촛불문화제는 폭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갤리온)의 저자 클레이 서키(Clay shirky)는 택시 뒷자리에서 휴대폰을 잃어버린 '에반'의 이야기를 통해 5년이나 10년 전과 지금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설명한다. 에반의 휴대폰을 주은 인물은 사샤. 그는 에반이 휴대폰을 찾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고, 자신이 경찰에 의해 붙잡힐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하지만 에바가 홈페이지를 통해 이에 대한 글을 올리자 유저들은 관심을 제공함으로써 에반이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도록 했고, 에반은 그 관심을 잘 이용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는 일을 맡았다. 이 사건은 유수의 신문사들에게까지 알려져 보도되었고 한 동안 사회의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이것은 지역적 사건이 순식간에 국제적 사건으로 확대될 수 있는지, 그리고 옳은 대의를 위해서라 그룹 동원이 얼마나 쉽고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촛불 이야기에 적용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가녀린 여중생 십여 명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설 때만 해도 50만의 촛불이 들고 일어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부의 쇠고기 협상이 부당하며, 우리 아이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겪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홍수처럼 사람이 늘어났다. 인터넷과 휴대폰 문자로 인해 청계천과 광화문은 단지 서울의 한 지역에 머무르지 않고, 외국인들이 관심을 갖게 된 세계적인 장소가 되었다. 이 국제적인 촛불이 타오른 사건에도 달라진 시대적 상황과 대중들의 역동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새로운 대중은 '조직'이 다르다
사람들은 어떤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이유를 자세히 알수록 일을 많이 하게 된다. 이미 할 의향이 있는 일도 더 쉽게 더 많이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면 훨씬 더 많이 할 수 있다. 이것이 인센티브의 법칙이다.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갤리온)) 경제학에서 이견이 없는 몇 안 되는 법칙 중 하나가 바라 사람들이 인센티브에 반응한다는 사실이다. (끌리고 쏠리고 들끌다, 27쪽)
기존의 조직과 새로운 조직 사이에는 '관리비용'이라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거대 기업은 소프트웨어를 만들 그룹이 스스로 형성되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직원들이 노동력을 관리한다. 직원들은 자유와 봉급을 맞바꾸고 직원의 생산물을 감독하고 모니터하는 비용을 부담한다. 조직이 수백, 수천으로 커지면, 그 관리자들까지 관리를 해야 하고, 결국에는 관리자들의 관리자들도 관리해야 한다. 종국에는 그 조직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엄청난 관리비용이 필요하다. 이들에게는 '시간이 돈'인 까닭이다.
조직의 달라진 패러다임을 설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저자 클레이 서키가 직접 경험한 AT&T와의 파트너십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사이트 스페시픽(site specific)라는 작은 웹 디자인 회사에서 기술 책임을 맡고 있던 저자는 AT&T라는 거대 기업과 계약을 맺게 되었다. 그런데 저자의 회사는 대부분 20대 청년이었으나 AT&T의 파견직원은 모두 머리가 희끗희끗한 베테랑들이었다.
그들이 논쟁하게 된 것은 프로그래밍 언어의 채택 때문이었는데 저자의 회사는 펄(perl)이라는 언어를 쓰는 데 비해, AT&T는 C++을 고수했다. 그들은 '펄'이 '상업적 지원'을 어디에서 받느냐고 물었지만, 펄은 '필 커뮤니티'로부터 지원을 받을 뿐이다. 그것도 무료로.
대기업의 파견 직원들은 이 사고방식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당연히 돈을 지불하고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지원을 받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 커뮤니티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돌아가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어려운 질문을 생각해내 comp.lang.perl.misc에 올리자 AT&T와의 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답이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대기업의 직원들을 설득하는 것은 결국 실패한 모양이다.
그로부터 10년 후 펄 커뮤니티는 규모를 더욱 키워간 반면 AT&T는 거듭된 대규모 정리해고와 대체 전략 개발에도 불구하고 회사 몸집이 보잘것 없을 정도로 줄었고, 결국 2005년에는 10년 전에 비해 규모가 1/5의 가격으로 매각되고 말았다. 펄 커뮤니티는 오늘도 펄을 사랑하는 수백만 명이 펄로부터 하루를 시작해 펄로 하루를 마감하기 때문에 건재하다.
이렇게 새로운 조직이란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아낌과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됨으로써 시간을 영속하는 것이다.
독일의 라이프치히에서 두 번째 촛불의 길을 열어라
1989년 동독의 라이프치히에서는 시민들과 청년들이 동독에 대한 반체제 시위를 시작했다. 500명이 참여한 시위에서 경찰은 50명을 체포했다. 하지만 시위대는 기세가 꺾이지 않고 매주 시위를 열었다. 처음에는 아주 보잘것없는 규모였다. 때문에 정부로서도 조치를 취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사태를 주시하기만 했다. 솔직히 청계천에서 촛불을 든 여중생의 숫자보다 적은 군중들을 탄압해서 무슨 이익을 보겠는가. 그런데 매주 시위를 진행하면서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시위가 떡잎 단계를 지나 만개를 시작한 것이다. '대중적 기반'이란 시위 참가자 수가 아니라 시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잠재적인 사람들의 수로 측정해야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순식간에 시위대는 수십 수백만으로 불어나 베를린장벽은 허물어졌다. 이것을 정보의 폭포현상이라고 한다.
우리들은 시위대의 숫자로 일희일비를 한 셈이다. 그리고 하루에 한번씩 시위를 하면서 50회를 넘긴 시점에서 피로도가 발생했다. 이것은 몇 가지 법칙을 위배한 셈이다. 앞서 말했던 '용이성의 법칙'을 어겼다. 내가 취재한 바에 의하면 촛불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하루 하루 시위에 가세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한 직장인은 며칠 동안 시위에 참여하느라 직장에서 졸기가 일쑤였다고 했다.
두 번째 실수는 너무 자주 시위를 한 것이다. 로테이션이 되면서 지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라이프치히처럼 일주일에 한 번 정도가 적당했던 것 같다.
집단행동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인식의 3단계를 통해야 하는데, 촛불에도 이를 적용할 수 있다.
1단계 : 모두가 무엇인가를 아는 단계
2단계 : 모두가 알고 있음을 모두가 아는 단계
3단계 : 모두가 알고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아는 단계
인식의 3단계에 도달해야만 집단행동이 일어날 수 있다. 시사저널 기자들이 시사인을 창간하는 과정에서 30억원이라는 자본금이 모인 것은 그들이 언론자유를 실천하면서 1년 내내 싸워왔고 독자들이 도왔고, 다른 언론이 지원하면서 인식의 3단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시사인의 경우 집단행동은 '지갑을 열기'였다. 촛불 역시 마찬가지다. 쇠고기 협정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 그것을 주장하면서 인식은 2단계로 넘어갔다. 매일같이 촛불시위가 진행됐고 경찰들이 진압에 나서며 2단계를 넘어 3단계로 향하고 있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는 불이 났다. 아마 가장 짧은 시기에 인식의 3단계로 도달한 것이 촛불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인식의 3단계가 당장 정부의 입장을 바꾸지는 못한다. 인식의 3단계가 반복되면서 규모가 커지면 정부 역시 자세를 바꾸지 않을 수 없다.
많은 곳에서 두 번째 촛불을 위한 준비작업이 한창이다. 두 번째 촛불이 인식의 3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깊은 성찰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최근의 촛불국면과 광고주압박운동 등 역사적인 대중들의 집단행동에 대해서 파악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클레이 서키의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를 숙독해볼 것을 권한다.

▲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클레이 서키, 갤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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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는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온 아기엄마가 살수차 2대를 끝내 되돌리기도 했다는 소식은 많은 사람들을 뭉클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아이를 둔 엄마와 이 문제에 대해서 토론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아이 엄마의 말을 듣고 나니 마냥 뭉클하게 생각할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아이 엄마는 '아이에 대해서 엄마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만약 엄마의 경솔함에 대해서 누군가 매질을 한다면 자신은 거기에 반대할 말이 없을 거라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편의상 저는 '기자'로 아이 엄마는 '엄마'로 했고,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분은 A로 표시했습니다. 실명과 사진 등을 공개할 수 없는 점을 양해 바랍니다.
6월 26일 1시40분, 전경들은 새문안교회에서 광화문쪽으로 시위대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전경들은 방패를 어깨 높이까지 치켜올렸다 땅을 내리쳤다. 그때마다 땅이 울렸다. 선임의 선창에 따라 뭔지 알아들을 수 없는 자기들만의 구호를 일제히 외쳤다. 여성들은 겁먹은 표정이었다. 제자리에 얼어붙어 울먹이는 젊은 여성이 보였다. 시위대들은 광화문쪽으로 밀려났다.
기자 : 아이 엄마가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살수차 앞을 막아서 2대를 결국 돌려세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참 대단한 엄마라고 생각합니다. 그 행동 자체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겠지만, '오죽하면 이랬겠냐'는 평가도 가능할 것 같군요.
엄마 : 그 소식을 저도 접했어요. 같은 엄마로서 많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엄마가 아이를 그런 위험한 곳에 데리고 온 점에 대해서 많은 비난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본적으로 엄마는 아이를 위험한 것으로부터 보호하는 존재여야 하는데, 아이를 도구로 삼았다는 지적에 대해서 자유롭지 않거든요.
기자 : 유모차 엄마들의 인터뷰 보도를 보면 아이와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현장에 데리고 왔다는 주장도 있는 것 같아요. 이 경우 아이의 의사판단이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는 원치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어쩌면 엄마의 주장을 아이에게 강요한 것일 수도 있고.
엄마 : 그런 면이 적지 않습니다.
A : 이전에 유모차에 대해서는 경찰이 강력하게 막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확신에서 그런 행동을 했을 수도 있겠네요.
기자 : 사례가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현장에 함께 가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저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예를 들면, 제 형님이 얼마 전에 돌아가셨는데 아이가 어려서 무덤 앞에서 사촌오빠와 장난을 하며 놀았거든요. 아이 엄마는 아빠 무덤 앞에서 절을 하게 하고 흙을 뿌리게 했지요. 아이가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런 경험과 이미지들이 분명히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요. 광우병 문제 역시 1~2년 안에 완전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오래 간다면 당사자인 아이들이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할 수 있는 거 아닐까요?
엄마 : 그것은 기자님이 아이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엄마는 어떠한 순간에도 아이를 보호해야 하며, 위험한 곳에 아이를 데려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장의 상황을 조금만 환기해볼게요. 살수차가 물을 뿌려대기 시작하고, 소화액을 뿌리죠. 그것이 아이에게는 무척 치명적인 거랍니다. 몸에 조금만 닿아도 세포에 엄청난 피해를 미치고 오래 가거든요.
소화액이 유모차를 완전히 덮어버렸다. 유모차 안의 아이는 당연히 소화액에 고스란히 노출되었을 것이다.
A : 사실 소화액이나 살수차뿐만이 아니죠. 의학 전문가의 의견을 인용한 신문에 보면 촛불시위 현장에서 커다란 충격에 노출된 아이는 극심한 외상후 스트레스(트라우마)에 빠질 수 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아이와 촛불시위 현장은 어쨌든 만나서는 안 될 궁합이 아닌가 생각해요.
기자 : 그러면 아이를 도구로 삼았다는 점과 아이가 직면할 가공할 만한 위험의 책임 문제, 이성적 판단이 없는 아이에게 현장을 강요한 문제 등이 제기될 수 있겠군요.
엄마 : 아이를 도구로 삼았다는 점 역시 지금까지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으니 문제가 안 되지만, 그렇지 않았을 경우 파장은 생각지도 못할 만큼 엄청날 수 있습니다.
아이 엄마와 대화를 하면서 저는 어떠한 것이든 균형을 잃는다면 원하는 바에 도달하지도 못하고 좌초하고 만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촛불시위를 당연시하기보다는 촛불시위 곳곳에서 보이는 이런 맹점이나 불균형들을 찾아내고 걷어내지 않는다면, 촛불은 경찰이나 이명박 정부가 아니라 민심에 의해 진압될 수도 있다는 오싹한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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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타자와 나를 구분하는 유니폼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가 바로 군복인데,
군복은 적군과 아군을 철저히 구분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적어도' 2년 동안 군복을 입어야 하는데
군복이 정치적인 아이콘으로 부각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보수적 가치를 사수해온 나이든 군복
2004년 5월 24일 서울 남부지방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 3명에 대해 처음으로 무죄를 선고하던 날 오후 서울 남부지법앞에서 집회가 열렸다. 법원의 판결을 규탄하는 재향군인회의 집회였다. 그들은 "국가안보 위태롭게 하는 법원의 판결에 650만 향군 통곡한다"라든지 "사이비판사 각성하라"같은 과격한 피켓을 들고 규탄집회를 벌였다.
재향군인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무죄 판결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연합뉴스 사진)
2004년 3월12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되고 나서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탄핵 역풍으로 벼랑까지 몰리고 국민의 분노가 극에 달하였지만, 한켠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있었다. 탄핵 가결일로부터 보름 후인 27일 탄핵안 가결에 찬성하는 80여개 보수단체로 구성된 ‘바른선택 국민행동’이 광화문 동화면세점 ‘나라사랑 문화 한마당’을 열어 ‘아, 대한민국’ 을 부르며 탄핵을 지지했다. 그들은 “북한 동포도 우리 국민이고 다들 어렵게 살고 있는데, 국제사회의 대북 인권결의안을 포기한 노무현은 김정일의 똘마니”라며 “노무현은 하야하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되던 2004년 3월 재향군인 등 보수단체들은 탄핵을 지지하는 집회를 열었다. (사진 : 연합뉴스)
이뿐만 아니다. 재향군인회는 2004년 국가보안법에 대한 논의가 한창 뜨거웠을 때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면 시청앞 광장은 인공기로 뒤덮이고 친북·좌경 세력에게 이 나라를 넘겨주게 될 것"이라며 국보법을 적극 옹호했을 뿐만 아니라 '의문사진상위원회'의 해체를 요구하는 등 사회 여론과 반대되는 목소리를 내왔다. 평택시민들이 터전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을 때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하면서 폭력시위를 벌인다는 이유로 이들을 강경진압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향군회법은 ‘재향군인회는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3조)고 규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조항이 무색해진 것은 사실이다.
이처럼 군복이 우리 사회에 드러낸 이미지는 고착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군복의 새로운 이미지가 2008년 대한민국에 찾아왔다.
2004년 10월 재향군인회는 국가보안법 사수와 의문사위 해체 등의 요구사항을 내걸고 집회를 했다. (사진 : 한겨레)
2008년, 군복과 애국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다
이어폰을 끼고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젊은 군복이 2008년 광화문의 촛불문화제를 주도했다. 이들은 촛불문화제와 거리행렬에 참여한 시민들을 전경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인간띠를 만들거나 스크럼을 짰다. 이로서 예비군들은 유모차 부대와 함께 국민적 스타로 떠올랐다.
그들은 왜 군복을 입었을까? 먼저 군복을 입은 장정들은 같은 장정인 전경에 대적할 수 있는 대표적인 대항마가 될 수 있다. 유니폼은 전경들에게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집회를 평화적으로 이끌 수 있다. 전경은 정부의 명령을 받기 때문에 시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진압은 강경진압으로 오해되기 쉽고, 여성에게는 성희롱, 학생에게는 폭력이라는 오해를 사기 충분하다. 이에 비해 예비군들은 시민들이기 때문에 호감을 얻을 수 있고, 폭력시위 근절이라는 전경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 즉 예비군은 정부를 비판하는 시민의 역할과 시민과 전경을 함께 보호하는 중재자의 역할도 할 수 있다. 군인이란 전역을 해서도 시민들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들은 보여주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열린 30일 저녁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문화제를 마친 참가자들이 거리행진에 나서자 예비군복을 입고 나온 자원봉사자들이 행진 대열을 보호하기 위해 손에 손을 잡고 차로에 늘어서 있다 (사진 : 한겨레)
내가 군복에 감명을 받은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군복이 가지고 있는 국가주의적인 편견을 시민적 에너지로 치환시켰다는 점이다. 그리고 군인도 정부를 비판할 수 있는 시민이라는 당연한 상식도 환기해 주었다. 군대를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지만, 군복이 이렇게 아름다워보인 적은 난생 처음이다.
30일 밤 美쇠고기 시장 개방 장관고시 강행에 항의하는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 예비군들이 스크럼을 짜고 있다. (사진 : 뉴시스)
군복과 함께 해방된 것은 태극기로 상징되는 애국심이다. 태극기가 국가주의에서 진정 해방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뿌듯하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반공사상을 국시로 여겨 국가주의를 세뇌당했던 오랜 기억들이 조금씩 벗겨지고 있다. 나도 어릴 때 반공글짓기에 열성이었던 어린이였으며, 꿈에서도 김일성을 죽이기에 혈안이 돼 있었다. 나의 어릴 적 순수한 마음은 국가주의에 깊이 감염된 상태였다.
5월 8일 밤 여의도에서 펼쳐졌던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에서 시민들의 행렬 위로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2006 독일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스위스전이 한창일 때 태극기로 투피스와 한복을 만들어 입은 커플이 열띤 응원을 하고 있다. (사진 : OSEN)
빨-병 (-甁)
먹는 물을 담아 가지고 다니는 그릇. 병같이 생겼으며 끈이 달려 있어 메고 다닐 수 있게 되어 있는데, 등산이나 소풍을 갈 때에 흔히 사용한다. (국립국어원)
순우리말인 빨병은 최근까지 금지어였다. 빨아먹는 병이라는 의미의 빨병에서 '빨간색'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레드 컴플렉스라고 하는데, 2002년에 와서야 우리는 이것을 벗어던질 수 있었다.
태극기는 2002년 월드컵에서부터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태극기를 필통이나 책가방에 걸어놓는가 하면 아예 몸에 두르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2008년 청계천, 여의도, 광화문, 시청에서 드디어 '애국'이라는 상징으로 떠올랐다. 국가주의가 개입되지 않았으며, 시민적 에너지가 충만한 '애국'이라는 개념을 우리는 얻은 것이다. 여의도에서 만난 한 학생의 한마디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정책에 반대한다. 이것이 나에게는 애국이다."
한달 내내 계속된 거리의 학교에서 내가 얻은 소중한 가치란 바로 이것이다.
덧붙여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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