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에 해당되는 글 13건
- 2008/07/20 국민토성 쌓던 날
- 2008/06/13 작가들이 바라본 촛불집회 (2)
- 2008/06/11 학생들에게 '촛불'과 '권리'와 '책임'을 모두 배우다 (2)
- 2008/06/11 아스팔트가 스케치북이 되었네!! (10)
- 2008/06/10 즉결처분 받은 이들을 위한 모금운동 어떨까? (2)
- 2008/06/10 촛불 한가운데서 길을 묻다
- 2008/06/04 비오는 날 청계천 주변의 또다른 전쟁
- 2008/06/02 아내가 준 손수건을 최루탄가스 막는 데 썼습니다.
- 2008/06/01 [현장]대한민국아, 우리는 매일매일 나아지고 있다
- 2008/06/01 물대포를 맞으면서 끝내 멈추지 않았던 노래
- 2008/05/31 군복이 이렇게 아름다워보인 적은 난생 처음이다 (10)
- 2008/05/29 [르포] 촛불을 든 청계천 사람들 (5)
- 2008/05/09 [여의도 촛불문화제 현장] 어른들이 많이 미안하구나
저마다 조형물에 뜻을 담았다.
명박산성은 물리력에 의존한 반면, 국민토성은 그 상징성에 방점이 찍혔다.
물리적으로 국민토성은 청와대는커녕 전경버스조차 제대로 넘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래주머니를 애써 옮겨 가며 토성을 쌓은 것은
정부가 국민들의 마음을 너무나도 읽어주지 않기 때문에 조형물로서 마음을 기탁해본 것이다.
쌓는다는 행위 또한 의미가 있다.
7월 18일 국회 본회의에서 열린 2차 긴급현안질의에 참석한 한승수 국무총리는 뜬금없이
"김대중 전 대통령은 39만표, 노무현 전 대통령은 57만표, 이 대통령은 500만표 차이로 당선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이 받은 표는 중요하게 보면서, 국민이 하나하나 쌓아놓은 분노는 보지 못하는 모양이다. 진정 중요한 것은 토성의 높이가 아니라 토성을 받친 모래주머니 하나하나의 염원이다.
토성을 쌓은 과정 하나하나가 매우 중요하다. 토성이 어긋나지 않기 위해 현장에서 논의를 하며 어디에 모래주머니를 둘지를 정하였고, 토성 쌓는 벗의 손이 다칠까봐 손수 장갑을 사다가 공수하기도 했다. 장정뿐만 아니라 노약자, 어린이까지 토서 쌓는 데 동참했다. 심지어 외국인도 거들었다. 특히 두 줄로 늘어선 길다란 인간띠가 모래주머니를 하나하나 나르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맹자에 "무력으로 사람을 진압하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단지 힘이 부족해서 굴복할 뿐 마음으로 굴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도덕으로 사람을 굴복시키면 마음속이 기뻐서 진실로 복종하게 된다."(以力服人者, 非心服也, 力不贍也; 以德服人者, 中心悅而誠服也. - 공손추 상)라는 말이 있다. 이명박 정부는 태생적으로 도덕적으로 치명상이 있어서 이 말이 필요조차 없을지도 모르지만, 권불십년이라. 권력은 오래 가지 않는다.
정부와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는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시민들이 가진 거라고는 '도덕성'밖에 없다. 도덕성이라는 것은 고도의 실천이 요구되는 무기다. 국민들에게 지속적인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도덕성을 정교하게 다듬고 부자신문들이 트집을 잡을 수조차 없도록 해야 한다. 다급하다고 빈틈을 보이면 다시 진흙탕에 빠질 뿐이다. 차분히 스스로의 페이스를 지켜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국제 앰네스티 노마 강 무이코 조사관은 촛불집회에 대해 평화의 집회, 신개념의 집회라고 찬사를 보냈다. 이것이 세계시민의 보편적인 평가다. 이들의 지지를 계속 받고 측면지원을 받기 위해서라도 도덕성의 유리그릇을 깨뜨리지 않기를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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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독특한 자기세계를 현실세계에 투사하여 거기서 나오는 빛을 독자들에게 비춰주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동일한 현상을 바라보면서도 독특한 인상을 남긴다. 아고라에서 한 블로거는 "물리력보다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말했다. 작가들이 보여준 거리의 상상력으로 촛불과 함께 한껏 타올랐던 분노를 눅여두는 것도 좋겠다. 더욱 높고 크게 타올라야 하므로... 작가군은 편의상 두 개로 구분했다. 촛불문화제 거리를 누비며 르포를 매체에 송고한 '현장파'와 현장은 아니지만 촛불문화제에 깊은 관심을 보인 '관전파'이다. 그들이 언급한 내용에 따라 재구성했다. - 블로거 주
<현장파 작가들>

이문재 시인은 6월5일 72시간 릴레이 집회를 체험하고 <시사IN> 제39호에 르포를 게재했다. 그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키워드로 집회를 해석하였다.

소설가 김연수는 경찰의 과잉진압 논란이 빚어지던 5월31일 현장에서 본 것을 한겨레신문 6월2일자에 게재하였다. 그날의 따뜻한 햇살과 물대포의 차가운 공포가 교착된 문체가 어지러웠지만, 5월의 햇살은 끝났다는 의미심장한 상징으로 6월의 전운을 암시했다.

신현림 시인은 5월29일 밤 종로에서 거리행진을 하는 군중들 속에서 본 것을 6월2일자 경향신문에 게재했다. 인간적이고 살갑고 질박한 생명의 온기를 느꼈다고 기록했다.


소설가 방현석(왼쪽)과 김남일(오른쪽)은 6월 9일부터 경향신문에 <한국작가회의 '촛불 집회' 릴레이기고>에 각각 현장르포를 기고했다. 방현석은 '상상력', 김남일은 '동지'로 촛불집회를 바라봤다.
<관전파 작가들>

이문열이 돌아왔다. 진나라 멸망 이후 유방과 항우의 결전을 다룬 '초한지'(민음사) 완간에 맞춰 귀국한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촛불집회의 본질은 위대하나 한편으로는 끔찍한 디지털 포퓰리즘의 승리라고 말했다. 기사는 연합뉴스를 참조했다.

소설가 이외수는 예술과 이명박 정부에 주목했는데, 예술이 진보에 기여할 때라고 주장했으며, 촛불집회를 색깔론과 배후조종설 따위로 가리려는 이명박 정부와 친 이명박 인사들을 묶어 콘크리안(뇌가 콘크리트화된 인간)이라고 비난했다. 6월 3일 한겨레와 프레시안에 기사가 실렸다.

김지하 시인은 6월 10일 경향신문에 게재한 칼럼을 통해 이명박 정부가 복잡다단한 현실과 속도감과 집단지성으로 무장한 네티즌에 대해서 너무 단순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촛불집회 참여자들이 인류의 민주주의 방향을 고민하는 신인류라고 찬사를 보냈다.
현장에서 종이의 뜰채로 갓 건져올린 낱말들
촛불집회의 5월과 6월은 온도 정도가 아니라 공기 자체가 다르다. 5월 31일 강경진압을 전후로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와 진을 차렸고 변화를 외치기 시작했다. 중고등학생에서 시민으로 주체가 바뀐 것도 그 시점이다. 소설가 김연수는 때 아닌 초여름에 야누아리우스(Januarius : 야누스 신의 달)와 조우했다. 5월의 오후에 가족끼리 옹기종기 모여앉아 소풍 같은 집회를 즐기는 모습에서 느껴지던 따뜻함은 살수포로 급랭하였고, 김연수는 극적인 반전의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듯했다. 그를 구출해준 것은 진압경찰에 맞서 끝까지 인내심을 발휘하며 비폭력을 유지했던 친구들이었다. 친구들에 대한 감사와 함께 6월의 대단원을 예고하였다. 안도와 혼란이 뒤섞인 어지러운 문장 안에는 송곳같은 전운(戰雲)이 감춰져 있었다.
신현림 시인은 다른 의미의 따뜻함을 소회했다. 그것은 질박하고 살가운 생명의 내음이었다. 시인에게 생명이란 질척거리는 성질이다. 온갖 모순과 욕망이 뒤섞여 있으면서 경이롭고 위대한 성질이 빛나는 것이 인간 생명체다. 그는 "세상 끝에 서 있는 절망감과 생생히 살아있다는 존재감 사이에서 강물처럼 흘러가는 행렬. 이렇게 모두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을 듯한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생명은 15년 전 보길도에서 서럽게 울었던 누렁소로 옮겨간다. 고깃덩어리가 아니라 생명덩어리인 소. 광우병 이후로 많은 소들이 태워졌다는 사실을 환기하며, 장작을 태우는 것과 소를 태우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각인시켰다. 그러면서 마지막 사자후를 내뱉는다. "소가 미치면 사람도 미치는 거야, 나무가 죽으면 산이 죽고, 물고기가 죽으면 바다가 죽는 거야, 라고! 연기 같은 탄식을 던지면서..."
오랫동안 '생명'을 화두로 삼았던 김지하는 촛불시위의 운동방향을 '생명을 섬기는 문화혁신'으로 규정했다. 한국문화 전체가 '생명'과 '평화'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문재 시인은 이 생명이 머무를 수 있는 토대, 즉 공간과 시간을 가지고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그에게 공간은 권력과 규제의 상징인 아스팔트였으며, 시간은 10대 여학생의 빼앗긴 미래로 대변된다. 법과 질서로 압축된 공적 공간이며 보행자에게 금지된 장소인 거리는 축제의 광장으로 역전된다. 기성의 경계가 완벽히 허물어지고 대신 그 자리에 사람과 사람이 몸을 맞대고 행진하는 축제의 장이 생긴 것이다. 시간은 10대 소녀가 번쩍 들어올린 피켓에 모두 담겨 있었다. "대학에 가고 싶다, 결혼하고 싶다, 꿈을 이루고 싶다" 자신들의 미래가 대통령, 정치인, 기성세대에 의해 강탈당하고 있음을 깨닫는 일성이다. 비단 소녀뿐이랴. 대한민국인의 미래는 불안이라는 짙은 구름에 갇혀 있고, 2단 짜리 컨테이너 장벽에 막혀 있는 상태다. 그는 촘스키를 인용할 뿐이었다. "당신이 변화의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당신은 정말 변화가 없는 현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소설가 김남일에게는 8~90년대와 2008년에 새로 만난 동지들이 서로 교차됐다. "저토록 해맑고 예쁜 여중생 동지들, 어디에서 저토록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나오는 걸까" 그는 자신의 동지들을 소개한다. 학원 빼먹고 PC방 갔다가 거리로 나온 여중생 동지, '뇌'에 아직 세상이라는 '개념'이 형성조차 되지 않은 유모차 동지들과 함께 행진하는 것이 황황하기 그지없지만 낯설지는 않다. 그가 믿고 의지할, 그리고 소중한 것을 함께 지켜나갈 동지들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방현석은 촛불집회에서 두 개의 상상력이 충돌하는 것을 목격했다. 컨테이너로 대변되는 70년대의 상상력과 소통와 속도로 무장한 2008년의 상상력이다. 2008년의 상상력은 컨테이너를 넘지 못했다가 아니라 넘지 않았다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넘을 필요가 없다. 이미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신인류의 상상력이다.
촛불의 원 밖에서 펼쳐진 올드보이의 리턴매치
그에게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촛불보다 차가웠다" 불이라는 것이 뜨거움을 상징하므로 '차갑다'는 말과 어울리지 않는 용어반복일 수 있다. 완간 서적에 대한 홍보의 자리이기도 했고, 원체 이 문제에 대해서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려 했다. 그래서 진의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촛불을 양면적으로 해석했다. '위대한 디지털 포퓰리즘의 승리'는 "촛불보다 차가웠다"는 말보다 묘한 풍경이 느껴진다. 포퓰리즘이 위대할 건 또 뭔가? 분노의 힘을 초농축하여 광장에 집결했으니 그 자체는 위대하지만, 그것이 습관병이 될 것이 끔찍하다는 말일까? 이런 댓글 하나 달고 가는 게 좋을 듯하다. "위대한 힘은 끔찍하게 변할 수 없다"
이외수 작가는 다혈질인가 보다. 이명박 정부에 화가 많이 났다. 심지어 "아가리가 백 개라도 잘못된 건 잘못된 거고 무식한 것은 무식한 것"이라며 "이제 그만 닥치시라"고까지 했다. 그보다는 촛불집회에 관한 그의 인상을 스케치해두는 게 좋겠다. '진흙 속 저 연꽃 곱기도 하지'라는 시어로 인상을 대신 전했다. 스스로 양심을 간직한 맑은 연꽃이다. 국민들이 경제라는 환각에 한 동안 취해 있었지만, 이제는 양심과 도덕을 다시 찾으려 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이명박 정부의 저열함이 너무 심각해 걱정이 되긴 하지만, 이것을 꼭 알아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김지하의 칼럼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전두환 전 대통령 다음으로 교양이 없는 대통령이 아닐까 생각한다. 전 씨는 대통령 시절 어느 행사에 가서 방명록에 이런 말은 남겼다. "自身感!" 사전에 없는 말이다. 아마 "自信感"을 쓰려다가 잘못 쓴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도 친필에 수많은 오탈자를 남기기로 유명했다. 김지하가 이런 사연을 알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보수적인 데다가 철학적으로 준비가 안 돼 있고, 학문적으로 모자란 어중이떠중이에다가 결정적으로 당면 문제를 풀어갈 도덕성과 능력이 부족하다"고 이명박 정부에 대해 혹평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공권력이 시민들을 제압한 듯하지만, 이것은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라고 말했다. 촛불시위 참여자들은 사위에서 나타난 문화적 폭발을 통해 잠재된 문제의식을 깨달으며 매일매일 성숙해지고 있는데, 이에 맞서는 이명박 정부는 벌써 30년 전으로 되돌아가버렸다는 것이다. 갑자기 도스또옙스끼의 데뷔작 <가난한 사람들>이 떠오른다. 몰락한 귀족 출신인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와 말단 공무원 마까르 알렉세예비치의 문화적 간극. 그들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아니라, 바르바라에게는 애초부터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도 마까르에게는 순정이라도 있었지.
이명박 대통령이여. 우리 벌써 100일 됐다. 헤어지면 안 되겠니~ 너무 수준차이나서 못살겠다!!
★ 작가들의 기사 출처(링크)
[시사IN 39호] 이문재, 세종로 한복판 ‘강한 민주주의’의 불씨를 보았다
[한겨레] 김연수, 물대포에 찢겨진 5월 마지막 ‘햇살’
[경향신문] 신현림, “오죽했으면 이 깊은 밤에 애 둘러업고 나왔을까”
[경향신문] [한국작가회의 ‘촛불 집회’ 릴레이기고](1)김남일
[한국작가회의 ‘촛불 집회’ 릴레이기고](2)방현석
[연합뉴스] 이문열 "촛불집회는 디지털 포퓰리즘의 승리"
[한겨레] 이외수, “낚시 달인? 배스와 쏘가리 구분도 못해”
[프레시안] 이외수 "빌어먹을 배후설, 아직도 '콘크리안' 많아"
[서울신문] 김지하, “촛불시위는 4·19와 마찬가지”
[경향신문] 김지하 시인, 생명 섬기는 문화혁신 설득아닌 토론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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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학생들이 주도한 5월2일 첫 집회는 6월 10일 100만인의 촛불을 만들어낸 기폭제였습니다.
신자유주의가 가르쳐준 것을 거부하고 물질주의적 욕망과 대비되는 ‘먹거리 안전’이라는 탈물질주의적 가치를 기치로 내걸었다는 점에서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깊은 가르침을 얻습니다.
특히 이들은 정치적인 권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촛불을 통해서 '권리'를 어른들보다 먼저 더 깊이 이해하고 시민들에게 일깨워주었습니다.
역사적인 촛불집회를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어디선가 모둠을 천천히 움직이는 게 보였습니다. 여학생 몇 명이 지하철 주변을 돌며 쓰레기를 줍고 있었습니다. 본능적으로 사진기를 들자 학생들은 수줍은 듯 흩어졌습니다. 제가 학생들의 청소작업을 방해한 꼴이 되었습니다. 지나가던 행인이 고맙다며 생수를 한통 건넸습니다. 학생들은 생수를 나눠먹고 다시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모습을 본 시민들이 하나둘 가세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웃으면서 격려도 하고 쓰레기통은 금세 가득 찼습니다. 주위도 쓰레기 하나 없이 환해졌고, 상쾌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니 얼마 전 시사IN에서 효자동, 청운동, 통의동 등 6구역을 담당하고 있는 환경미화원 김용휘(가명)씨와 인터뷰했던 내용이 떠오릅니다. ("경찰청장에게 쓰레기 벌금 고지서 보내겠다")
김용휘 씨는 “시민들은 분리수거도 잘 해주는데 경찰은 골목길마다 먹은 도시락을 버려두고 간다” 고 말했습니다. 특히 계급이 좀 있는 높은 분들은 좋은 밥 먹고 치우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솔선수범이라는 말이 참 무색합니다. 권력이 높은 데로 올라갈수록 무책임이 커지는데, 아래로 내려갈수록 책임만 무거워지는 세태가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정치적 권리도 없어서 책임질 것도 없는 학생들이 나서서 권리와 책임이란 무엇인지 행동으로 보여주는데, 참 할말이 없이 우두커니 서서 사진만 찍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하루를 이 한마디로 정리했습니다.
"학생은 시민의 선생님이다."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학생들이 거리의 쓰레기를 치우고 있습니다. 거리에서 시키지 않은 일을 해보면 알지만 무지 쑥스럽고 머쓱한 기분이 듭니다. 단지 잘 보이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거리의 큰 촛불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으로 읽혔습니다.
한 시민이 학생들에게 고맙다며 생수 한병을 건넸습니다. 저도 손에 무엇인가 있었다면 주었을 테지만, 그냥 생수 한 병에 몰래 고마운 마음을 담았습니다.
주위가 금세 깨끗해지고 환해지는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무거운 쓰레기 봉투를 외소한 몸으로 들고 낑낑대면서 여기저기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있는 여학생의 모습이 오랫동안 뇌리에 남을 것 같습니다.
시민들이 하나둘 청소행렬에 동참하기 시작합니다. 이 거리에 쌓인 쓰레기가 우리들의 흔적이라는 것을 하나둘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학생들은 광화문역 안쪽으로까지 깊이 들어갑니다. 계단 맨 앞쪽에 있는 사람은 행인이 아니라 쓰레기를 주으러 다니는 학생입니다. 단지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다면 사람들이 안 보이는 곳으로 자꾸 들어가려 하지는 않았겠죠. 쓰레기줍기 하나로 '책임'을 이야기하기에는 어폐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들의 작은 행동 하나가 시민들을 움직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들이 조그맣게 일으킨 촛불이 100만의 거대한 은하수 모양의 촛불행렬을 만들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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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재 시인은 72시간 릴레이시위에서 '새로운 공간'을 발견했다고 기록했다. (시사IN 39호) "거대도시에서 도로는 법과 질서의 힘이 압축되어 있는 대표적인 공적 영역이다. 중앙선, 차로, 표지판, 신호등, 규정 속도 등이 운전자를 규제한다. 그리고 도심의 대로는 보행자에게는 금지된 장소다. 촛불을 들고 중앙선을 걸어보면 안다. 시속 3km로 완보하다 보면, 신호등, 표지판, 주위의 건물이 전혀 달라 보인다." 2008년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에서 촛불 행렬은 권력과 규율의 상징인 10차선 대로를 광장으로 바꾸어 버렸다. 광장으로 바꾸는 것만으로 모자라 아예 커다란 스케치북으로 만들어버렸다. 유치원 때 붓 가는 대로 그림을 그리듯, 가로 두 줄 세로 두 줄 그려놓은 아홉 칸짜리 종이에 아버지, 어머니란 글자를 처음 새기듯 도로에 천천히 자신의 뜻과 소망을 적어놓았고 거기에는 유머가 흘러넘쳤다. 영화배우이자 감독인 류승완 씨는 2008년 촛불문화제의 대표적인 키워드는 '유머'라고 규정했다.
누군가 길거리에 흰색과 노란색, 빨간색 분필을 놓았고, 시민들은 그 뜻을 알아채 하나둘씩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대부분 '쥐'이거나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였다.
한 소년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길거리 스케치북에 생각을 옮겨놓고 있다.
대통령 때문에 도매금으로 욕을 얻어먹는 쥐의 섭섭한 표정이 인상적이다. '쥐'박이라는 말이 몹시도 못마땅한 듯하다
쥐의 천적인 고양이를 그려 놓았다.
사뭇 성찰적인 메시지도 오간다. 광우병은 소를 공장의 부품 다루듯 대형생산하려는 인간의 욕심으로 생긴 질병이므로 순수하게 인간이 창조해낸 병중의 하나이다.
시민들이 길거리에 한창 글과 그림을 새겨넣고 있다. 이 밤이 지나면 길거리는 난생 처음 보는 장관이 펼쳐질 것이다.
누가 시작했는지 중앙선 한가운데 촛불들이 띠를 이루고 있다. 촛불은 시민들의 염원이 높이 날아갈 수 있도록 놓인 활주로를 연상케 한다.
꺼지지 않는 촛불
광화문 일대와 경복궁 등 주요 도로에는 모두 컨테이너 박스가 2층으로 지키고 섰다. 거기다가 그리스(윤활제)를 발라 침범을 막고 있다.
시사IN에 따르면 컨테이너 박스 아이디어는 어청수 경찰청장의 머릿속에서 나왔다고 한다. 어청장은 부산경찰청장 시절이던 2005년 11월 부산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때 최초로 컨테이너를 들고 나왔다. 1차 정상회의가 열렸던 11월18일 벡스코 회의장으로 진입하는 수영강 3호교에 경찰은 컨테이너박스 10여 개를 이중으로 쌓아 시위대의 진입을 원천 봉쇄했다. 뿐만 아니라 시청광장을 점유한 보수단체의 집회는 경찰청이 허가한 것인데 2005년 APEC 정상회담 때도 보수단체의 집회가 있었다. 보수단체 집회와 컨테이너 박스라는 두 가지 복병으로 시위대의 동선을 원천봉쇄하자는 속셈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는 대통령이 국민과 대화할 생각이 없음을 선포하는 것이자 집권자의 '공포'를 상징한다. 시민들은 이 우중충한 조형물을 마음껏 조롱을 해주었다.
시민들이 컨테이너 장벽에 피켓을 붙이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장벽을 한껏 조롱하고 있다.
이미 많은 시민들이 붙여놓은 게시물을 시민들이 사진과 영상에 담고 있다.
유치장에 갇힌 이명박 대통령의 형상 밑에 '민주경찰 함께해요'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애먼 국민들이 유치장에서 겪었을 서러움과 좌절감, 고통을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거리의 예술가들은 그림을 그리기에 분주하고 기자들은 사진에 담기에 분주하다. 이래저래 6월 10일은 바쁜 하루였다.
아예 종이를 앞에 세워둔 사람도 있었다. 마치 절대왕조가 된 것처럼 행세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자후를 보내고 있다.
이 흉물스러운 조형물에도 시민들은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이름하야 '명박산성'이다.
거리의 예술가들이 꺼지지 않는 초를 만들었다. 이 컨테이너는 밤이고 낮이고 타오를 것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두었으면 좋겠다. 바로 역사이기 때문이다. 2008년 6월 10일의 서울은 '촛불'이 어떤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는지 진면모를 보여준 날이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시민들의 해학은 멈추지 않는다. 광화문역에 놓여 있는 광고판이 기가 막히게 현재의 세태를 잘 압축해 놓았고, 한 재기발랄한 시민이 이를 발견해 그 앞에 '이명박'이라는 글자를 써놓았다. 길을 가던 시민들이 걸음을 멈추고 크게 웃으면서 사진을 또 담았다. 즐거운 웃음으로 가득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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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무료로 제공하는 닭장차 투어'라는 말이 유행했지만, 절대 무료가 아니다.
경찰이 지난 9일까지 시위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연행한 참가자들은 모두 561명으로 18명은 훈방 조치돼 풀려났고 56명은 즉결심판에 회부됐으며 484명은 불구속 입건, 그리고 3명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10일 검찰과 법원에 따르면 전체 연행자의 10%에 달하는 56명은 서울시내 5개 법원의 즉결심판에 회부돼 이미 20만원 이하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즉결심판은 정식 형사소송 절차를 거치지 않고 경찰서장의 청구에 따라 판사가 행하는 약식재판으로, 대상은 20만원 이하 벌금ㆍ구류 또는 과료에 해당하는 경미한 범죄사건이다. (연합뉴스)
닭장차에 연행되는 사람들은 10~20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서민들에게 이 돈은 만만치 않은 부담이다. (오마이뉴스 사진)
마음이 아프다.
전 국민이 반대하는 정책을 무차별적으로 정신없이 밀어붙이는 이명박에 반대하기 위해 거리로 모여든 시민들 중에서, 단지 경찰 옆에 있었다는 이유로, 또는 맨 앞 자리에서 목소리를 높였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맞고 닭장차에 끌려가 48시간 동안 구금돼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릴지 모르는 시민들은 이제 10만원~20만원의 벌금을 감당해야 한다.
나는 시민들 뒤에서 사진을 찍고 조용히 있다가 막차 타서 집으로 갔지만, 구금된 시민들이 나보다 폭력적이거나 구금될 정도로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을 가만히 놔둘 것인가?
앞으로 몇 명이 더 구금될지 모른다.
만약 내가 구금이 된다면 어떨까?
구금이 되거나 입원을 한다면 대체로 그 비용은 본인이 부담한다.
어쩌면 나 대신 구금됐을 수도 있고, 나 대신 입원했을지도 모르는 그에게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타당해 보이지 않는다.
피켓이나 각종 양초 비용, 의견광고 등을 모금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다면
당연히 그들의 벌금이나 입원비도 십시일반으로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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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 이른바 '100만대행진' 전날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한산하다.
서울시청앞 광장과 청계광장 양쪽에 설치됐던 자유발언대 중 청계광장 쪽의 자유발언대가 사라졌다. 그곳에 일주일째 눌러앉아 있는 시사IN 주진우 기자에 의하면 며칠 전부터 청계광장 물머리에서 단상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것은 집회참여인원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회사 중견간부라고 소개한 한철옥 씨(57)는 이에 대해서 "시민들이 너무 오랫동안 달려왔기 때문에 숨고르기를 하는 것이다. 오늘 나온 사람들은 전위대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는 한철옥 씨(57)는 신문이 너무 촛불정국에 매달려 민생 등 본위의 역할을 망각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사진촬영을 요청하자 이왕이면 경찰 앞에서 찍자고 하는 바람에 경찰들이 도망쳤다.
누가 촛불의 민심을 제도화할 것인가?
촛불집회는 이번 주로 중대한 국면을 맞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촛불이 꺼지지는 않겠지만, 촛불의 색깔이 달라질 수는 있다는 거다. 촛불의 민심은 어떻게 해서든 표현되어야 하며,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이라면 제도화ㆍ법제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그래서 나온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수행할 정치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이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6워5일자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 "지금 야당은 있는가"에서 "'대안 정부(alternative government)'로서 야당이라는 길잡이 없이 청와대 결단만 바라보는 지금의 한국정치는 분명 비극"이라고 개탄했다. 박상훈 대표에 의하면 단순히 수적인 열세가 문제가 아니라 "사태의 핵심을 힘 있게 규정하고 과감한 해결책을 제시하며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가능의 공간’을 열지 못한 채 수동적으로 상황에 끌려가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것은 촛불집회 현장에서도 시민들이 공감하는 문제점이다. 소프트웨어개발회사에서 영업 일을 하고 있는 이명호 씨(39)는 "국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답답하다. 하지만 야당은 집회 목소리를 바탕으로 힘을 내야 한다"며 야당에게 대안이 있다고 주장했다. 영등포여고 2학년에 재학 중인 집회 참여자 역시 "18대 국회가 개원돼 어떻게든 국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철옥 씨 역시 야당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분열되는 등 구심점을 잃은 이후 힘을 못 내고 있지만, 야당이 지금이라도 민심으로 들어가 시민들의 마음을 읽고 행동한다면 국민들은 열렬한 지지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며 야당의 분발을 촉구했다. 촛불집회를 하는 것은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힘을 잃은 야당에게 국민이 연일 응원을 보내주는 것이니 이 메시지를 잘 읽어야 한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촛불행렬에서 만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야당 역할론'이었다.
6월 10일, 신문을 펼쳐드니 기사 제목 하나가 눈에 띈다. "민주당, 촛불 정국에 ‘밥그릇 싸움’ 몰입" 누가 외로운 시민들의 말을 들어줄 것인가. 답답하기만 하다.
디자이너 김영복 씨(40)는 정론 매체가 살살 눈치를 보지 말고 좀더 과감해져야 한다고 주장했고, 아직도 진실보도로서 부족한 면이 많다고 평가했다.
경향, 한겨레 등 정론매체들.. 꽁무니 좇기, 촛불찬양, 눈치보기 하지마라!!
반면 언론의 역할론에 대해서 역설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야당이 제대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면 언론이 정부에 맞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고, 시민들의 분노를 제대로 지면에 반영해 민주주의에 기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시간을 벌다가 방송사를 장악해 여론을 바꾼 뒤 다시 기존 정책을 밀어붙이겠다는 이른바 '일보후퇴 이본전진' 꽁수를 부릴 정황이 농후하다. 정부 출범 한달 만에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 최시중 전 한국갤럽 회장이 방송통신위원장에, 대선 때 한나라당 선대위 방송특보를 맡았던 이몽룡 전 한국방송 부산방송 총국장이 디지털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 사장에, 지난달 29일과 지난 5일엔 역시 방송특보 출신인 구본홍 전 문화방송 보도본부장과 정국록 전 진주 문화방송 사장이 뉴스 전문채널 YTN(와이티엔)과 아리랑 티브이 사장에 각각 내정됐고, 역시 6월 5일에는 KBS 이사회의 선출이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친한나라당 성향의 한림대 유재천 특임교수가 이사장으로 발탁됐다면 그 다음 상황은 안봐도 비디오다. 이럴 때일수록 제 목소리를 내는 언론매체가 영향력을 키우고 시민들과 소통의 구조를 긴밀히 해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요청이다.
촛불광장이나 온라인 등에서 의제를 주도하고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매체는 경향, 한겨레, 오마이뉴스, 시사IN, 블로거뉴스 등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들 매체의 영향력은 부자 신문에 비해서 미미한 실정이다. 시사평론가 김종배 씨는 시사IN 39호에 기고한 "조ㆍ중ㆍ동 흥망성쇠 이명박 정부 손에"라는 칼럼에서 "5월 마지막 주에 수직상승을 하며 꼭짓점을 기록했던 한겨레의 페이지뷰가 1200만 회였던 반면 조중동 가운데 가장 실적이 떨어지는 동아일보의 5월 최저 페이지뷰는 3000~4000만 회를 상회했다"며 이 현상을 '움이 싹트고 있을 뿐'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질적인 영역인 의제 선점과 설정 능력에서 약진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거리에서는 신문사에 대한 호오가 워낙 분명히 정해져 있어서 평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 그래서 거리의 1등 매체들에게 '쓴소리'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명호 씨는 오마이뉴스를 가장 선호한다고 밝히면서 그 이유로 '신속하고 구체적인 보도'를 들었다. 하지만 속도감 있게 기사를 게재하다 보니 오탈자나 정제되지 못한 부분이 눈에 거슬린다고 말했다. 워낙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매체도 덩달아 흥분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다. 김영복 씨는 경향과 한겨레에 점수를 주었지만 진실보도는 아직도 부족하다는 평가다. 좀더 과감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철 변호사의 내부고발로 촉발된 삼성비자금 사태가 벌어졌을 때도 언론사들이 눈치만 살피다가 시사IN에서 특종을 보도하기 시작하자 봇물 터지듯 기사를 내보냈던 점이 떠올랐다. 김 씨는 "아고라나 아프리카 등에서 기사가 나오지 않았다면 이들은 분명히 지켜만 보고 있었을 것이다"며 "MBC에서 보도하면 KBS-SBS 식으로 속보가 전이되는 행태는 가히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다"고 비판했다. 시청역 광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정론매체들이 촛불시위대 꽁무늬만 쫓아다니지 말고 연구하고 노력해서 심층보도와 대안을 내놔라"고 호통쳤다. 그리고 30대의 한 시민은 "촛불찬양에만 매달리지 말고 찬반을 아우르는 공정한 보도를 해달라"고 말했다. 한철옥 씨 역시 "신문을 펼치면 중간까지는 모두 촛불 이야기다. 촛불정국을 너무 심하게 다룬다는 느낌이 있다. 촛불이 타올라도 서민들의 민생은 여전히 고단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시선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슈에만 몰입하고 지나친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그의 반문은 이 시대의 기록자인 언론매체가 반드시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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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틀 비가 온 것을 가장 기쁘게 여길 사람은. 이명박 정부? 틀렸다. 우의 파는 아줌마들이다. 우의를 파는 상인은 지하철 시청역에서만 10여팀이 넘었다. 김밥아줌마, 촛불아줌마들이 신이 났다. 이명박 정부가 또 하나의 시장을 열어준 셈이다.
지하철 시청역에는 우의장사가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우의 파는 아주머니에게 "오늘 얼마 팔았느냐"고 물었더니, "바빠서 셀 시간도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시민들의 손에는 우의가 하나씩 쥐어져 있었다.
아예 세 개씩 손에 쥐고 팔기도 하고, 배낭 한두 개에 가득 담아서 팔기도 한다.
백화점형 상인도 등장했다. 이 아주머니는 김밥도 팔고 떡도 팔고 심지어 우의도 취급한다.
시민들이 우의상인에게 산 우의를 입으며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다.
비가 오면 우산이 빠질 수 없다. 긴 우산 짧은 우산 크기에 맞게 진열해 두었다.
지하철역을 빠져나갔다고 해서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길가에서 양초를 파는 아줌마. 이 아줌마도 청계천의 '촛불잔치'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시국을 틈탄 장사꾼들이라고 욕할 것 없다. 운동회나 큰 잔치때는 이런 노점상들이 잔치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한다.
"내 얘기 좀 들어봐요" 시민단체의 캠페인 전쟁
상인들만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비좁은 지하철역사에서 시민단체들이 부스를 만들어 자신들의 뜻을 전하는가 하면 시민들에게 서명을 받느라 분주하다. 오늘 저녁에는 비가 오다가 그칠 것이라고 예보했으니, 비가 그치기 전에 모여 있는 시민들을 한 사람이라도 유치하느라 무척 치열한 모습이었다.
한 시민단체가 자신들의 뜻을 알리기 위한 부스를 설치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한 시민단체의 도우미가 서명을 받기 위해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시민단체의 회원들이 시민들에게 서명을 독려하고 있다.
캠페인을 벌이는 시민단체들은 서로 이야기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를지라도, 뜻하는 바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많은 시민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비오는 날의 지하철역사'는 또하나의 전장였다.
집회에 때맞춰 내린 비에 피켓의 새로운 패션이 등장했다. 이름하야 '피켓우산(혹은 우산피켓)'이다.
지난 주 토요일(5월 31일) 경찰이 살수포를 뿌리고 과잉진압을 시도하자 험악해졌던 집회 분위기가 촉촉한 빗줄기를 맞으며 다시 축제분위기로 바뀌었다. 한 시민은 이러한 흐름을 두고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했다.
"이것이 2008년 대한민국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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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좀비처럼 온몸에 힘이 풀리고 좌절과 허무를 견디느라 마음은 황폐해졌지만, '그곳'에 가면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지인에게 전화를 했더니 군중들이 광화문에서 막혀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광화문의 상황이 내 마음과 같았습니다.
광화문의 거의 모든 출구는 봉쇄됐습니다. 막힌 출입구에는 혹시나 있을 '비상'(?)에 대비해 전경들이 배치됐습니다. 모든 출구와 국민들의 마음까지 봉쇄된 채 이명박 정부는 어제는 물대포를 발포했고, 오늘은 최루탄(혹은 분말소화기)을 발포했습니다.
경찰은 버스 위에 올라가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내려가지 않으면 강제 연행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여자 경찰의 목소리로 "지금 여러분 때문에 시민들이 혼란을 느끼고 있습니다. 선동을 당장 멈추십시오" 따위의 말로 시민들을 자극했습니다. 급기야 어제 가공할 만한 위력을 보여주었던 살수포를 장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민들은 가방에서 우산과 우의를 꺼내 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살수포가 아니었습니다. 최루탄이 흘러나오고 매캐한 연기에 시민들이 괴로워했습니다. 어제의 교훈으로 우산은 준비했지만, 마스크는 미처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저도 마스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가방 어딘가에서 손수건 한 장을 발견해서 얼굴을 가렸습니다.
그 손수건은 땀이 많은 저에게 아내가 선물해준 것입니다. 여태 한번도 쓰지 못했던 손수건인데, 최루탄을 막는 데 쓰고 말았습니다.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그렇습니다. 아내를 데려오지 않은 것이 다행스러우면서도, 앞으로 이 정부가 무슨 무기로 시민들을 잡을지 걱정이 됩니다. 만약 평화시위가 보장된다면 아내의 손을 잡고 꼭 현장에 함께 하고 싶습니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 이명박 정부가 실탄을 발포한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화'의 '대'자도 꺼내기 싫어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내일은 어떤 새로운 무기를 시민에게 들이댈지 두렵습니다.
아내가 선물한 손수건으로 땀을 닦는 대신 코와 입을 막았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시사IN의 천관율 기자는 어제 윤전기를 돌렸어야 하지만, 자신들이 작성한 기사가 정부의 어젯밤 도발로 휴지가 돼버렸다며 불평했습니다. 이처럼 2008년의 상황은 한마디로 '예측불가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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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자정을 전후로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물대포를 쏘았고 시민들은 물러서지 않았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젖고 다치고 쓰러졌다. 2008년 지금의 상황이 매우 절망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분명히 매일매일 변화하고 있다.
1. 대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다
6월 1일 자정에 나는 시청앞광장에서 시민들을 만났다. 대부분은 경복궁에서 경찰들과 대치하고 있었는데, 시청앞광장은 지친 시민들이 쉬고 있었다. 대학에서 음악동아리를 한다는 학생이 황급히 다가와 오늘 시위 안하느냐고 물었다.
그 학생은 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끝내 몸이 일어서지 못했고 그것이 일반적인 대학생들의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촛불집회가 나날이 진행되는 것을 보고 나도 동참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밤이 늦었지만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쇠고기 수입 반대를 의제로 시작됐던 촛불문화제는 중고등학생들에 의해서 촉발됐고, 시민들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대학생들이 마지막으로 참여했는데, 전국에 있는 대학생들이 경복궁으로 시청으로 몰려들었다. 대학생들은 대학의 깃발을 내걸고 애써 연습한 안무를 시민들 앞에서 펼쳐보이며 경쾌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대학에는 냉소적인 분위기가 있다는 것을 대학생들은 전해주었다. 한 대학생은 강의실이나 동아리방에서 쇠고기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면, "그거 안 먹으면 되지 않느냐"거나 "우리가 해봤자 되겠냐?"는 등 애써 외면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대학생들이 집회에 나오지도 않고 너무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많다"는 나의 질문에 부끄럽지만 부정하지 않겠다고 털어놨다.
한 50대 시민은 얼마 전 <위험사회>를 쓴 울리히 벡의 한국 방문 소식을 전해 주었다.
시민에 의하면 울리히 벡은 "대한민국은 내가 그렸던 <위험사회>보다 더 위험사회가 되고 있다"고 한다. 울리히 벡은 한 강연회에서 "20대가 정의를 이야기하지 않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오늘이 오기 전까지 사실상 대한민국은 20대의 공백 상태라고 할 수 있었지만, 청화대 앞에 모여든 생기발랄한 대학생들은 이것이 한낱 기우일 뿐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대한민국아, 우리는 매일매일 나아지고 있다
2. 축제의 형식을 빌려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2008년식 '행동'이다.
"386세대 입장에서는 지휘도 없고 체계도 없어 답답해 보이지만, 이것 역시 하나의 발전과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부족한 부분은 앞으로 축적되고 학습될 것이지 그것이 본질은 아니다."
"나는 집회에 스무 번 넘게 참여했다. 4월 28일에는 200명에 불과했지만, 매일매일의 변화가 분명히 있다. 정부가 이것을 읽지 못하면 집권 내내 힘겨울 것이다."
50대의 한 주부는 "비폭력은 시간이 너무 걸린다"며 "사랑도 뜻뜻미지근하면 결국 깨지는 거 아니냐"며 평화와 축제 위주의 분위기를 경계했다.
40대와 50대, 이른바 386들은 2008년의 집회를 보면서 아쉬움이 무척 많은 눈치였지만, 2008년식 행동을 인정했다. 지회와 체계, 전략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0대의 주부는 축제분위기로 흐르고 있는 집회문화를 가리켜 "원래 시위는 축제가 맞다. 만약 비장한 분위기였다면 대중들에게 외면받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윤도현 밴드가 참여한 촛불문화제를 예로 들었다. 그날 윤도현 밴드가 '축제'처럼 너무 노래를 많이 불렀다는 비판이 많았다는 전언을 소개했다. 그 자리는 분명히 콘서트나 축제와는 다르다는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때문에 굳이 '축제'와 '투쟁'을 구분하는 방식은 전근대적이었음이 드러났다. 형식은 축제를 하고 있지만, 분명히 메시지가 있다. 한 여대생은 생각이 달랐다. "2002년 월드컵처럼 축제분위기로 간다면 메시지가 분산될 수 있다. 시민들이 화가 단단히 났다는 것을 분명히 전달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집회에 열번도 더 참여했다는 30대의 한 시민은 2008년의 행동을 이렇게 해석했다.
"정치인이나 운동가의 연설이 아니라 각계각층의 개인적인 주장과 자유발언을 2~3시간이 넘게 하는 것이 더 생생하고 설득력 있다. 87년처럼 정보가 차단돼 있는 상황에서 몇몇 지식인들이 시민들을 계몽시키는 시대에 비해 2008년은 시민들이 담론을 만들 정도로 정보의 흐름이 빠르다. 설령 시민들이나 학생들이 잘 모른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학습해갈 것이다. 아이들 대신 공부를 해줄 수는 없지 않은가"
대한민국아, 우리는 매일매일 나아지고 있다
3. 집으로 가지 않고 거리에서 서로 나누다.
살수차의 무차별 발포가 시작되자 시민들이 뭔가를 던졌다. 물병이 아니다. 시민들은 그것을 받아서 하나둘씩 갈아입었다. 우의였다. 우의가 어디에서 보급된 것인지는 잘 모른다. 광주민주화운동 때는 아주머니들이 길거리에서 직접 밥을 해다 시민들에게 먹였지만, 2008년 서울에서는 시민들이 생수통과 초코파이, 마가렛, 커피를 서로에게 전하며 몸을 녹여주었다.
국가는 시민들에게 싸늘한 물대포를 뿌려댔지만, 상처받은 시민들은 서로에게 우의를 건네주었다. 밤새 감기걸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저희 형님이 사왔습니다. 돈은 안 받습니다. 앞으로 갈길이 머니 속을 든든하게 달래시기 바랍니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초코파이와 생수, 커피를 나눠주었다. 나도 초코파이를 하나 먹고 기운을 차렸다.
정부가 시민들을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우리는 서로 의지하며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절박한 상황으로 몰렸다. 새벽에 도우미의 절박한 목소리가 애잔하게 들린다.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흩어지면 최전선에 있는 시민들이 모두 연행됩니다. 새벽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차가운 길바닥에서 새우잠을 자거나 이야기를 하면서 졸린 눈을 일으켜 세웠다. 아니면 즉석에서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이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으나 서로를 의지하기도 하고 힘을 주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는 결국 물리력을 동원해 대규모의 진압작전을 실시했다. 물리력과 물리력의 충돌은 이제 불가피해졌다. 앞으로 촛불시위가 어떤 국면으로 전개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성난 시민들은 "내일은 짱돌을 들고 오겠다"고도 했고 아예 지게차를 들고와 버스를 밀어버리겠다고도 했다. <맹자>라는 책에서도 "힘으로 누르면 당장은 억압할 수 있을지 몰라도, 힘이 떨어지는 순간 끝장이다"고 했다. 언제나 힘을 주고 있을 수는 없다. 물리력 동원은 이명박 정부의 패착으로 기록될 것이다. 시민들은 하루가 다르게 깨어나고 있으니까.
대한민국아, 우리는 매일매일 나아지고 있다
한 시민이 가져온 메시지가 비장하다. 이 문구를 보니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 "우리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명박 정부야! 너도 자지 마라. 자지 말고 똑바로 지켜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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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하나를 사이에 두고 경찰과 시민들의 대치가 격렬해졌다.
버스는 금방이라도 넘어갈듯 위태로웠고
경찰은 필사적으로 물대포를 쏘아댔다.
시민들은 대형태극기와 우산을 펼치며 이명박은 물러가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우의를 나눠주며 그 자리를 끝까지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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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타자와 나를 구분하는 유니폼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가 바로 군복인데,
군복은 적군과 아군을 철저히 구분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적어도' 2년 동안 군복을 입어야 하는데
군복이 정치적인 아이콘으로 부각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보수적 가치를 사수해온 나이든 군복
2004년 5월 24일 서울 남부지방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 3명에 대해 처음으로 무죄를 선고하던 날 오후 서울 남부지법앞에서 집회가 열렸다. 법원의 판결을 규탄하는 재향군인회의 집회였다. 그들은 "국가안보 위태롭게 하는 법원의 판결에 650만 향군 통곡한다"라든지 "사이비판사 각성하라"같은 과격한 피켓을 들고 규탄집회를 벌였다.
재향군인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 무죄 판결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연합뉴스 사진)
2004년 3월12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되고 나서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탄핵 역풍으로 벼랑까지 몰리고 국민의 분노가 극에 달하였지만, 한켠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있었다. 탄핵 가결일로부터 보름 후인 27일 탄핵안 가결에 찬성하는 80여개 보수단체로 구성된 ‘바른선택 국민행동’이 광화문 동화면세점 ‘나라사랑 문화 한마당’을 열어 ‘아, 대한민국’ 을 부르며 탄핵을 지지했다. 그들은 “북한 동포도 우리 국민이고 다들 어렵게 살고 있는데, 국제사회의 대북 인권결의안을 포기한 노무현은 김정일의 똘마니”라며 “노무현은 하야하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되던 2004년 3월 재향군인 등 보수단체들은 탄핵을 지지하는 집회를 열었다. (사진 : 연합뉴스)
이뿐만 아니다. 재향군인회는 2004년 국가보안법에 대한 논의가 한창 뜨거웠을 때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면 시청앞 광장은 인공기로 뒤덮이고 친북·좌경 세력에게 이 나라를 넘겨주게 될 것"이라며 국보법을 적극 옹호했을 뿐만 아니라 '의문사진상위원회'의 해체를 요구하는 등 사회 여론과 반대되는 목소리를 내왔다. 평택시민들이 터전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을 때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하면서 폭력시위를 벌인다는 이유로 이들을 강경진압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향군회법은 ‘재향군인회는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3조)고 규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조항이 무색해진 것은 사실이다.
이처럼 군복이 우리 사회에 드러낸 이미지는 고착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군복의 새로운 이미지가 2008년 대한민국에 찾아왔다.
2004년 10월 재향군인회는 국가보안법 사수와 의문사위 해체 등의 요구사항을 내걸고 집회를 했다. (사진 : 한겨레)
2008년, 군복과 애국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다
이어폰을 끼고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젊은 군복이 2008년 광화문의 촛불문화제를 주도했다. 이들은 촛불문화제와 거리행렬에 참여한 시민들을 전경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인간띠를 만들거나 스크럼을 짰다. 이로서 예비군들은 유모차 부대와 함께 국민적 스타로 떠올랐다.
그들은 왜 군복을 입었을까? 먼저 군복을 입은 장정들은 같은 장정인 전경에 대적할 수 있는 대표적인 대항마가 될 수 있다. 유니폼은 전경들에게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집회를 평화적으로 이끌 수 있다. 전경은 정부의 명령을 받기 때문에 시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진압은 강경진압으로 오해되기 쉽고, 여성에게는 성희롱, 학생에게는 폭력이라는 오해를 사기 충분하다. 이에 비해 예비군들은 시민들이기 때문에 호감을 얻을 수 있고, 폭력시위 근절이라는 전경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 즉 예비군은 정부를 비판하는 시민의 역할과 시민과 전경을 함께 보호하는 중재자의 역할도 할 수 있다. 군인이란 전역을 해서도 시민들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들은 보여주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열린 30일 저녁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문화제를 마친 참가자들이 거리행진에 나서자 예비군복을 입고 나온 자원봉사자들이 행진 대열을 보호하기 위해 손에 손을 잡고 차로에 늘어서 있다 (사진 : 한겨레)
내가 군복에 감명을 받은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군복이 가지고 있는 국가주의적인 편견을 시민적 에너지로 치환시켰다는 점이다. 그리고 군인도 정부를 비판할 수 있는 시민이라는 당연한 상식도 환기해 주었다. 군대를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지만, 군복이 이렇게 아름다워보인 적은 난생 처음이다.
30일 밤 美쇠고기 시장 개방 장관고시 강행에 항의하는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 예비군들이 스크럼을 짜고 있다. (사진 : 뉴시스)
군복과 함께 해방된 것은 태극기로 상징되는 애국심이다. 태극기가 국가주의에서 진정 해방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뿌듯하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반공사상을 국시로 여겨 국가주의를 세뇌당했던 오랜 기억들이 조금씩 벗겨지고 있다. 나도 어릴 때 반공글짓기에 열성이었던 어린이였으며, 꿈에서도 김일성을 죽이기에 혈안이 돼 있었다. 나의 어릴 적 순수한 마음은 국가주의에 깊이 감염된 상태였다.
5월 8일 밤 여의도에서 펼쳐졌던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에서 시민들의 행렬 위로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2006 독일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스위스전이 한창일 때 태극기로 투피스와 한복을 만들어 입은 커플이 열띤 응원을 하고 있다. (사진 : OSEN)
빨-병 (-甁)
먹는 물을 담아 가지고 다니는 그릇. 병같이 생겼으며 끈이 달려 있어 메고 다닐 수 있게 되어 있는데, 등산이나 소풍을 갈 때에 흔히 사용한다. (국립국어원)
순우리말인 빨병은 최근까지 금지어였다. 빨아먹는 병이라는 의미의 빨병에서 '빨간색'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레드 컴플렉스라고 하는데, 2002년에 와서야 우리는 이것을 벗어던질 수 있었다.
태극기는 2002년 월드컵에서부터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태극기를 필통이나 책가방에 걸어놓는가 하면 아예 몸에 두르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2008년 청계천, 여의도, 광화문, 시청에서 드디어 '애국'이라는 상징으로 떠올랐다. 국가주의가 개입되지 않았으며, 시민적 에너지가 충만한 '애국'이라는 개념을 우리는 얻은 것이다. 여의도에서 만난 한 학생의 한마디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정책에 반대한다. 이것이 나에게는 애국이다."
한달 내내 계속된 거리의 학교에서 내가 얻은 소중한 가치란 바로 이것이다.
덧붙여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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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아무리 시민기자, 블로거 기자이지만
21차례의 집회 동안 몇 번 찾아가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사정도 있고 해서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인터뷰도 일체 하지 않았습니다.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1. 가족, 세대... 이명박만 빼고 다 있었다.
청계천 소라광장에서 맨 처음 만난 분은 종이를 머리에 둥글에 두른 할아버지였습니다.
머리에 두른 종이는 건(巾)을 연상합니다.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입니다.
집회가 끝날 때까지 할아버지는 침묵을 지켰으나,
기자의 질문에 울화가 터졌는지, 인터뷰가 끝난 후에도 말씀은 멈출줄을 몰랐습니다.
앞쪽에 앉은 할머니도 표정이 안 좋아 보였습니다.
대체로 젊은 사람들이나 가족들은 촛불문화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으나,
나이 드신 분들은 다소 무겁게 받아들이시는 것 같았습니다.
집회에는 가족, 친구, 직장동료가 모둠으로 많이 왔습니다.
아이들에게 내용을 설명해주기도 하고,
어른들은 서로 시국에 대해서 진지하게 토론도 하고 그랬습니다.
외국인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 외국인은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시민과 '한국어'로 대화하고 있습니다.
AP뉴스에 한국인들의 촛불문화제를 상식 이하의 행동으로 폄하하는 기사를 올렸던데,
한국어를 힘겹게 구사하며 사람들에게 다가간 외국인이 AP 기자와는 참 다르게 보였고, 고맙기까지 했습니다.
2. 난 이렇게 주장했다
많은 인파들 속에서 재미있는 분을 포착했습니다.
여러 개의 특이한 표현 용품을 직접 만들고 와서
분위기에 따라 모양을 달리 했습니다.
갈길 바쁜 관계로 두 개만 찍었습니다.
역시 집회에는 피켓 만한 것이 없습니다.
주최측에서 만들어진 피켓을 나누어 주기는 했지만,
참가자들은 집에서 손수 만든 피켓을 많이 들고 왔습니다.
이것은 이들이 동원되지 않고,
자발적인 마음에서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반증합니다.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자기 시간 축내면서 이렇게 할 리 없지 않겠습니까?
특이한 복장을 입고 집회장소를 찾으신 분들이 많았지만, 단연 돋보이는 분은 바로
한 스님이었습니다. 스님들도 청계천에 많이 보였습니다.
저는 누가 목탁을 이렇게 두드리나 했습니다.
꽹과리는 많이 봤지만,
박수 대신 목탁을 두드리는 것은 또 다른 맛입니다.
참신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3. 다양한 기자들
기자란 신문사에서 월급 받으면서 일하는 직장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청계천에서만큼은 기자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기자란 현장에서 듣고 보고 묻고 적고 찍고 하면서 분위기를 남기는 모든 사람이 아닌가 합니다.
할아버지 기자, 아줌마 기자, 청소년 기자.. 기자들을 참 많이 보았습니다.
이들은 각자 다양한 입장에서 청계천을 그려낼 것이고 기록할 것입니다.
그것이 다 모여야 온전한 청계천의 그림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4. MB의 수난 시대
얼굴이 많이 상했습니다. 누가 우리 대통령에게 이런 해코지를 한 것일까요?
아, 잘못 말했습니다.
세상에 어느 현직 대통령이 거리 한가운데에서 이렇게 몰골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한 학생이 창의력을 발휘했군요.
MB를 히틀러와 한 자리에 두니
누가 밥이고 누가 나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포스트잇 악플러 보신 적 있습니까?
어떤 포스트잇은 도대체 몇 글자를 처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악플은 인터넷에만 있는 게 아닌데,
나는 웬일인지 그것이 악플로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잘못된 것일까요?
이렇게 하면 댓글을 쓴 사람을 찾기도 참 힘들겠네요. ip주소도 없으니^^;;
"내가 요새 가장 자랑하고 다니는 게 대선 때 이명박 안 찍은 거다!"
재기발랄한 댓글도 보입니다.
세상으로 나온 네티즌을 저는 여과 없이 보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맥주 한 잔 생각이 났는데,
이 간판 보고 그 생각이 달아났습니다.
MB맥주는 어떤 맛일까요?
참 재미있는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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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탄핵 범국민운동본부가 주최한 여의도 촛불문화제는 6천여 명이 운집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윤중로를 'ㄴ자 모양'으로 길게 이어진 행렬에 사람들이 자꾸 뒤이어 들어오는 형국이었다. 참여자의 구성은 매우 다양했다. 물아기를 안고 온 엄마부터 초중고등학생, 직장인, 주부 등 모든 세대가 한데 모인 자리였다. 세대가 다른 만큼 생각도 다르고 이해관계도 달라질 수밖에 없을 텐데, 인터뷰를 해본 결과 요구사항은 나이든 사람이고 어린 사람이고 다르지 않았다. 초등학생부터 5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 기자주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협상에 항의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채우자 앞에 앉은 사람들부터 뒤에 앉은 사람들에게 촛불을 나눠주어 거리는 금세 촛불로 뒤덮였다.>
세대는 달라도 걱정은 한결같아
"어린이신문에서 30개월 이상 소도 수입한다는 기사를 보았어요. 무서워요"(이담초 5학년 이수정 양)
"국민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세요.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주세요"(중학교 3학년 학생)
"사람들의 걱정이 커지지 않게 정보를 공개했으면 좋겠다"(용화여고 2학년 여학생)
"국민을 대변하는 것이 정부인데, 정부의 역할을 똑바로 해주세요"(영산고 2학년 학생들)
"정보에 대한 통제와 끊임없는 밀실정치를 당장 그만두라"(IT 업종에 근무하는 20대 직장인)
"국민이 원하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일곱 살 아이를 둔 30대 주로미 주부)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었으면 좋겠다"(중학생 딸을 둔 40대 주부)
"다수의 사람들이 행복한 정치를 해달라"(고2 딸을 가진 51세 주부 이모씨)
- 이상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에 꼭 해주고 싶은 말"에 대한 답변
우석훈 씨는 <88만원 세대>라는 책에서 대한민국 사회는 세대간 착취현상이 매우 심각하다고 우려한 바 있는데, 최소한 여의도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 생각이 통하는 듯했다. 초등학생부터 50대 주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지만, 걱정하는 내용은 한결같았다. 이명박 정부는 왜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느냐는 질타다. 한 학생은 "청와대 분들과 정부에 계시는 분들이 직접 이곳에 나와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계천의 두 번의 집회를 포함해서 세 번째로 집회에 참여한다는 50대 주부는 "청계천에서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여의도는 아기엄마나 주부들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기자가 만난 고등학생은 용화여고, 회수고, 영산고 등이었는데, 학교에 따라서 40명 반에서 10명에서 많게는 25명 반에서 16명까지 적지 않은 고등학생들이 청계천과 여의도에 있었던 3회의 집회에 참여했다고 학생들은 전했다. 기자는 학생들과 인터뷰를 하기 전에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전했다. 어른으로서 여기까지 오게 한 것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태극기 아래 수천 명의 점점한 촛불 행렬이 늘어서 있다.>
죽기 싫어서 나왔다
어떻게 해서 직접 참여를 하게 되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학생은 망설임 없이 "죽기 싫어서요"라고 대답해 몹시 당황스러웠다. 그 학생은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쇠고기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 알고 있는 듯하지만 자신들처럼 절실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어른들은 알지만 아이들은 느낀다는 것이다. 행사를 알게 된 것은 대부분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서다. 자신을 고3 수험생이라고 소개한 한 남학생은 "개교기념일이라 쉬는 날이지만,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 참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학원수업을 빼먹고 온 학생들도 적지 않은 듯했다. 대체로 학생들은 사진을 찍는 것과 실명을 공개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학교 공개는 괜찮다고 말했다. 언론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이 노출될 경우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말이다.
"공부를 하는 것이 학생의 본분이 아니냐" 하는 짓궂은 질문을 던져 보았다. 돌아오는 대답이 그야말로 우문현답니다. "배운 것을 활용할 수 있어야 진짜 학생이다"라는 회수고 3학년 최재용 학생의 말에 기자는 그만 기가 죽고 말았다. 한 학생은 "학생도 국민이므로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무엇보다 용화여고 2학년 학생의 말을 듣고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저희가 나설 정도면 상황이 좀 심각하다는 얘기다"
면목동에 사는 송이 엄마 주로미 주부는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행렬에 동참하고 싶어서 나왔으며, 특히 아기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를) 지켜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와 함께 이 자리에 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아이의 문제일 거라고 생각해 직접 보여주고 싶어서 데려왔다"고 말했다.
<애독하는 어린이신문을 통해 쇠고기 문제의 심각성을 알았다는 이담초등학교 5학년 이수정 어린이와 남동생. 이수정 어린이는 솔직히 집에서 동생과 놀고 싶었다고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당신이 내 옆에 있어서 나는 든든하다
여의도 광장에는 학생들이 천 명은 넘게 보였다. 이를 감안해 학생과 어른들이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선택한 것이 바로 '애국가'다. 태극기도 여기저기서 쉽게 볼 수 있었다. 군중이 태극기를 가지고 온 이유는 "우리도 애국자입니다"라는 진행자의 소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학생들의 직접 참여에 대해서 어른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IT업종에 근무하는 직장인은 "휘둘리는 건 위험하지만 그들이 나오는 것은 정당한 권리다"라며 학생들을 응원했다. 성산동의 한 주부는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서 20대의 투표율이 너무 저조해서 걱정을 많이 했지만, 오늘 여기서 젊은 사람들과 학생들을 많이 만나게 돼 대한민국의 미래가 아직 어둡지 않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며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행사에 참여한 한 학생도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것을 느껴서 좋았으며, 특히 옆에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니 매우 든든하다"며 기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오늘 열린 촛불문화제를 포함해서 현재 인터넷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국민의 행동과 이를 바라보는 언론에 대해서 우려와 불만이 쏟아졌다.
한 직장인은 정부의 밀실정치도 문제지만 도농의 정보격차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언론에만 유지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상황과 국민적 메시지를 잘못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주부는 최근 조갑제 씨가 "1만명을 모두 잡아들이라"고 한 발언을 들며 "참을 수 없는 모욕"이라고 질타했다. 어른들은 물론 학생들도 언론의 편파적인 보도에 대해서 불만을 나타냈다.
<5월 6일 저녁 9시 20분경, 여의도 광장의 윤중로에 촛불을 든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다.>
인터뷰에 응한 한 학생은 학교에서 배운 현대사 과목을 예로 들며 "4.19 혁명 때 언론은 제대로 보도한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지금 와서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현재의 언론 실태를 비판했다.
한편 이번 행사를 주최한 이명박 탄핵 범국민운동본부는 '정치선동'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 신경을 쓴 듯 보였다. 며칠 전 청계 광장에서의 행사와 달리 정치적인 구호를 외치지 않고 침묵과 애국가, 촛불만을 가지고 행사를 진행했다. '조아세' 등 시민단체나 각종 정치 세력들이 호기를 틈타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는 팜플렛을 배포했지만, 이로 인해 주최측과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진행자의 선창에 맞춰 따라 한 구호는 "농부 아저씨들, 우리가 지켜드리겠습니다"나 "어른들이 미안합니다"와 같은 메시지뿐이었다. 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없지는 않았다. 인천 용현동에 사는 안형남 씨는 "이곳에 나와서 어떤 방식으로든 의사를 표출하는 행위 자체가 정치적인 행동인데 너무 몸을 사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 박 아무개씨 역시 "메시지가 없는 행사라 밋밋했다"는 평이다.
세 번의 운집, 만 명이 넘는 행렬에 혹자는 냄비와 월드컵을 떠올렸다. 월드컵처럼 집회를 즐기기 위해서 참여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고, 다른 건수가 터지면 곧 묻힐 거라는 비관적인 이야기도 많았다. 하지만 인터뷰에서 만난 고등학생의 말처럼 쇠고기 문제는 아무리 양보한다고 해도 생명과 건강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쉬이 가라앉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현장의 중론이다. 그 중에서도 한 시민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냄비가 끓더라도 이번에는 좀 제대로 끓여보자!"
<한 어린이가 엄마와 촛불을 들고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여의도 광장에서는 어린이를 데리고 오거나 심지어 아기까지 업고 온 엄마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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